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피게 됩니다.
인간의 언어와 지식의 한계로 인하여 성자의 나심과 성령의 발출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별히 영원 전에 성자께서 어떤 상태고 계셨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며 정립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혹자는 성자를 처음에는 삼위의 관계가 아니라 성자라는 칭호가 붙기 전에는
<말씀>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요한복음의 태초(요1:1)는 창세기의 태초(창1:1)와는 시간적 간격이 다릅니다.
요한복음이 영원 전을 가리킨다면, 창세기는 천지창조의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태초는 그야말로 무시간적 영원 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자들은 영원 전에는 아들로 존재하지 않고, 말씀으로만 존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있을까요?
왜 요한은 성자를 설명하면서 '말씀(로고스)'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다른 복음서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사도 요한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는 날 밤에 들었던 고별설교와 기도를 통해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 아들이며, 그 말씀을 다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예수님은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성육신 한것만이 아니라, 아무도 보거나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전달한 것입니다. 요한이 말씀을 성자의 위치에 놓은 것은 성자의 지위를 흔들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자만이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기에 전달해야하는 충성된 증인(계1:5)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말씀)을 다 너희에게 (말씀으로) 알게 하였음이라(요15:15)
이 사실은 히브리서 지자 역시 증거합니다.
옛적(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들과 말씀을 혼동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예수님은 처음부터(영원 전부터) 아들이었고, 부활하여 승천한 이후에도(영원까지) 계속해서 아들입니다.
아들과 말씀 중에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 하는 논란은 코메디이며,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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