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비슷합니다.
즐거우면 기쁨의 노래를, 마음 상하면 아픔의 노래를 부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도달하면 할 수록 더 깊은 노래가 나옵니다.
① 아담은 눈부신 하와를 보며 감동의 노래를 합니다.
*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
② 구사일생으로 홍해를 건넌 후 온 이스라엘이 <모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출15장)
③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야빈과 시스라를 제압한 후 승리를 노래했습니다(삿5장)
④ 불임으로 애를 낳지 못하던 한나는 사무엘을 가진 후 즐거워하며 찬양했습니다(삼상2장)
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한 후 그 기쁨을 노래합니다(눅1:46-55)
⑥ 극적으로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나서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처럼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계15:2)
주로 놀라운 일을 경험한 후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무슨 내용으로 불렀을까요?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신음이 담긴 기도를 들으시고, 악인들을 심판하러 하실 때 즉 성도들을
향해 <큰 일을 행하실 때> 부른 노래입니다. 이것을 <새 노래>라고 했습니다(계5:9-10).
(십사만 사천)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 |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당한 성도들의 죽음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온 몸으로 주님을 증거한 것은 악인들에게 주는 <마지막 생명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약속하신 것을 믿기에 죽음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으며,
결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은 악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줍니다.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스데반의 죽음이 바울이라는 걸출한 사도를 탄생케 했던 것처럼,
십사만 사천 중의 순교자들을 통해 수많은 악인들이 돌아 올 것입니다.
십사만 사천(온 성도들) 중에서 순교자들은 비록 목숨을 잃었지만 약속하신대로
이긴 자가 되어 그들의 이마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계14:1, 3:12)
새 노래에 대하여 시편(시33:3, 40:3, 96:1, 98:1, 144:9, 149:1)과 이사야에서도 언급합니다.
*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를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사42:10)
새 노래는 모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 - 창조, 섭리 -이나 또 현재에 행하시는 역사하심과 미래에 행할 일들을
찬양합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드러내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심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항상 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고, 순종하며 동행함으로 일어난 세밀한 관계를
노래함입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과 함께 그 현장에 있을 때 부를 수 있는 성도들만의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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