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김재성 교수)

오은환 2023. 1. 7. 21:06

김재성 교수는 구원론의 핵심을 이루는 칭의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합니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입니다. 
김교수는 이 두 가지 중에서 능동적 순종의 중요성이 간과되었음을 지적하고, 
다시 회복되어야 할 중요한 교리로 정리했습니다. 

 

16세기 곧 루터와 칼빈으로부터 17세기 신학자들까지 능동적 순종을 주장한 분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묘사했고, 반대파에 대해서는 논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합니다. 
이 글은 김재성 교수가 "크리스찬 투데이"에 올린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님의 순종"이란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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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칭의론의 기초가 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별하면서 칭의론의 기초로 삼았다."(머리말)

 

2. 아담 V 예수 그리스도의 대조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아담의 실패와 그 후손들의 죄악이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구속사역을 성공적으로 성취하시고 성령을 보내어서 복음을 받게 하여

새언약을 맺는 것이다."

 

3. 아담이 순종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아담의 모든 행위들은 놀라운 종말론적인 의미와 구원론적인 목표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아담의 순종은 그가 대표하는 모든 후손들에게까지도 주어질 종말적인 영생을 보장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성경에서 만약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일에 순종했다면 모든 후손들에게 영생을 보장하는 선물을 주었을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조될 때 아담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아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순종했다면 모든 후손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순종함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후손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계획했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

 

4. 두 순종이 주는 유익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justification)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우리에게

죄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정적으로 의인이라고

선언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수동적 순종)은 죄 사함을 제공하고,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여 얻은 능동적 순종은 신자에게 의를 전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율법에 순종하심이 주는 의가 각각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머레이 교수 역시 그렇습니다.

 

"존 머레이 교수(1898-1975)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은 능동적 순종이고,

고난당하신 것은 수동적 순종이라고 재규정했다. 두 가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신 것이고, 죄에 맞서서 거룩하게 되도록 노력한 것이다."

 

5. 능동적 순종이 주는 위안

김재성 교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위안을 준다고 합니다. 

첫째는 신자의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입니다. 

능동적 순종을 통해서 신자는 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모두를 이루심으로써, 율법 앞에서 완전한

의로움을 성취하셨고,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만드셨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60항목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마치 전혀 죄를 범하지 않은 자들처럼 인정을 하시었다.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믿음을 가진 자들의 것으로 전가한다는 점이 칭의와 성화의

긍정적 요소를 구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확신을 주자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구원론의 틀을 바꿀 수 있기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이) 이렇게 성자의 능동적 순종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의로움을 전가 받아서,

비록 죄인이지만 전혀 죄가 없다고 간주된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기쁨이 된다.

성자의 능동적 순종은 일반 성도들이 아무리 철저하고 완벽하게 살아가더라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에 놓여서 항상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답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직도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있으면서, 아무리 노력을 다하여도 도저히 온전케

될 수 없음을 탄식하는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야말로 완벽한 복음이

되는 것이다."

 

6. 능동적 순종의 혼란(위험성)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일목요연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신학적인 작업으로 많은 논쟁을 일으키며, 온전한 답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능동적 순종이 연약한 성도들의 칭의와 성화에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원론에 대한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고백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능동적 순종을 십자가에서 분리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철저한 순종이 흠 없는 어린 양의
피 흘림으로 연결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고 전가시킴으로 보는 것이 좋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