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포도원 품꾼 비유(마20:1-16)

오은환 2023. 1. 21. 04:06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일할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이라는 일당을 지불하기로 약속합니다. 
정시(아침 일찍)에 부른 일꾼들도 있고, 놀고 있는 자들은 수시로 들어옵니다. 

심지어 일을 마감하기 한 시간 전에 온 일꾼들도 있습니다. 

 

일한 삯은 늦게 온 사람부터 줍니다.

한 데나리온씩을 주자 처음에 온 자들은 더 받을것이라 기대감이 큽니다. 

그러나 처음 온 자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자 불같이 화를 냅니다. 

더위 가운데 일한 우리들을 이처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옳은가를 묻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을 상징하는 하나님은 처음 정시에 와서 일한 일꾼들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저주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

 

이 비유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한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과 다른 부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정시에 와서 아침부터 일했고, 6시, 9시, 11시에 온 부류들은
(마20:5-6) 복음에서 떠났던 창녀, 세리이며 뒤늦게 합류한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포도원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은 순종한 자들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도 동일한 은혜를 받음으로 끝을 맺으면 좋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이어집니다. 

 

-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내 뜻대로 주었다(마20:13).

- 내가 선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악하게 평가하는구나(마20:15).

 

포도원 품꾼 비유는 탕자의 비유(눅15:11-32)와 매우 유사합니다. 

큰 아들은 동생 탕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받아들인 아버지를 원망하는  
정시와 와서 일한 품꾼과 같습니다. 

 

왜 하나님은 정시에 와서 일한 일꾼들이나 탕자의 큰 형을 책망하는 것일까요?

언뜻 보면 이들은 성실한 부류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말썽 피우고 돌아온 자들을 더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와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기에 이 비유를

미로에 빠뜨렸습니다. 바로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성령의 내주와 은사들로 평안을 누리며 예배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정작 삐딱한 자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즐거워하는 것을 시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라 칭함을 받은 자들이 실상은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않고 있음을 책망한 것입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이끄심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결말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불평가운데 멸망에 이릅니다. 

 

*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사62:9-10)

 

포도원 품꾼 비유는 구원론의 심각한 결함이 무엇인지 보게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지 않아도 무조건 은혜로 구원받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줍니다.

초대교회 최고의 설교로 평가받는 스데반 집사의 호소를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7:51)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 곧 성령을 따라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성령을 거스리는(반역) 자들로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이같은 가르침이 올바른 구원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