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단어는 죽음입니다.
그것도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에 간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죽고 싶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진 본능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성경만이 보여줍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주 간략하게 세 곳 - 구약, 복음서, 서신서 - 에서 찾아 봅니다.
1. 구약성도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구원, 영생)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구약 성도들의 구원을 가장 잘 묘사한 곳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채 죄인으로 잉태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전무(全無)합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 30장 6절은 전적타락한 죄인을 살리는 구원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그 후손에게 베푸는 은혜로 '마음의 할례'가 등장합니다(롬2:29).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상태 곧 칭의(롬4:11)가 되었음을 외적으로 드러낸 성례입니다.
외적 할례는 먼저 마음의 할례가 있었기에 반드시 행하여야 하는 성례입니다(창17:10, 14).
죄인을 향한 마음의 할례는 곧 성령의 사역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죄악을 제거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레19:23-24).
물세례(할례)가 먼저 성령 세례(마음의 할례)를 받았음을 바탕으로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의롭다 함(칭의)을 받은 성도(할례받은 자)는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은 율법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30:6절에는 이런 행함의 밑바탕을 성령의 능력주심에서 찾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랑을 부어주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칭의(할례)와 성화(율법 = 말씀)를 이룰 때 성도에게 생명이 주어집니다.
여기에 나오는 생명은 구약적 표현으로 곧 영생과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 구원을 위해 사람이 우선적으로 주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베풀어준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구약의 구원론은 신약과 비교해도 그 길이나 방법이 동일함을 보게 합니다.
메시아와 한 몸으로 연합된 이스라엘을 의롭다 칭하셨습니다(고전10:18).
그리고 거룩한 성례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고전10:1-4).
2.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준 구원의 방법은?
어느 시대나 영생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눅10:25)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을 모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눅10:28)
복음서나 기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신서들을 보면(특히 야고보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라는 말씀이 보이지 않아서 오해를 받곤 합니다.
이미 할례를 받았기에(칭의) 그 부분은 생략하고 곧바로 성화를 중심으로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칭의를 무시한 것이나 배제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 <너희 -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8:5)
예수님은 구약을 인용해서 청중들에게 말씀하신 레위기 18:5절은 신명기 30:6절처럼
성령의 힘주심을 통한 성화를 가리킵니다.
왜 청중들에게 너의 안에 계신 성령께서 힘주심을 따라 살아라 말하지 않을까요?
청중들은 이미 다 알고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서도 전혀 그 의미나 정의를 설명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습니다.
청중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설명이 불필요한 것입니다.
3. 서신서에서 바울이 알려준 구원의 길과 방법은?
※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롬2:25)
위 구절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구원을 확신하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율법(성화)과 할례(칭의 -롬4:11)의 관계를 통해서 칭의가 효력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성화를
수반해야 됨을 강조합니다.
칭의의 효력을 성화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나무(칭의)의 좋고 나쁨은 열매(성화)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마12:33)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보장받는데 왜 성화가 들어가야 하느냐고 투덜거립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한 번 형성되면 모자라거나 속을 썩여도 자식을 버릴 수 있느냐 하는
논리입니다.
★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믿으라'는 단어는 예수께서 메시아 되심과 죄 사함을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곧 칭의를 가리키며 이로 인하여 간수와 그 집 식구들은 모두 세례를 받습니다(행16:33).
세례를 받음은 구약적 표현으로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행16:33).
★ 세례 = 할례
이방인들은 구원의 길에 관해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리스 로마 문화는 다신론을 옹호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추가할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뿐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칭의와 더불어 성경 곳곳에서 성화를 강조합니다.
성화는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마땅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을 가리킵니다.
성도의 삶은 예수님처럼 거룩한 제물로 드려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롬12:1-2).
칭의와 성화를 통해 구원은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어느 하나를 없애버리고는 결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언약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칭의와 성화의 길이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언약입니다.
성경적 구원이 시대마다 다를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서 시대나 신약시대의 구원의 길과 방법 곧 칭의와 성화는 항상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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