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개혁주의는 구원론에서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성화 없는 구원을 밀어붙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됨)만 고수할 것인지 난감해 합니다.
"성화 없는 구원은 가능한가?"
"열매 없는 구원은 가능한가?"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구원론이 가장 기초가 되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의도로 이 비유를 중요하게 다루었을까요?(막4:13)
길 가, 돌밭, 가시덤불을 잘 가꾸어 좋은 땅으로 바꾸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그런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이 비유는 구원론의 근본 곧 열매를 맺는 자들은 구원을 얻고,
열매가 없는 자들은 구원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육체적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혈통적 요인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입니다.
성령을 따라 성화를 이룬 자들만 하나님 나라(구원, 영생)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의 특징은 성화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칭의만을 강조한 결과로 구약이나 복음서,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됩니다.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에서 열매(말씀, 율법)의 역할이 없는 곳과 있는 곳으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성화와 견인은 구원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상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어떤 죄를 짓거나 어떤 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구원이 확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 성도가 자살을 해도 구원 받는다.
★ 성도가 이단에 빠져도 구원 받는다 - 신천X, 통일교, 구원파, JMS...
개혁주의 신학은 이런 난감한 상태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까요?
몸은 버림을 받아도 영은 구원을 받을까요?(고전5:5)
이단에 빠진 자들이 가진 믿음은 허구였을까요?
아니면 믿음에서 파선한 것일까요?(딤전1:19)
어떤 학자들은 길 가, 돌밭, 가시덤불의 상태에 있는 자들의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
상상적(임시적) 믿음이라 칭합니다(마13:18-23).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성도가 아니었고, 스스로를 신자라 착각한 것에
불과하다는 변명입니다.
이런 주장은 청중(유대인)들이 처음부터 신자였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청중들(유대인)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칭의) 할례받았다는 사실을
구약에서 보지 못한 것입니다(롬4:11).
성도 안에 내주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맺은 열매(성화)는 그 나무(칭의)를 보증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통하여 나무의 상태를 판단하십니다.
즉 성화를 통해 칭의가 유지되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단으로 가버린 자들은 복음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구원은 보증되지 않습니다.
'8. 구원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아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0) | 2023.04.26 |
---|---|
거듭남과 생명책에 기록됨의 연관성 (3) | 2023.04.24 |
할례를 통해 본 칭의 (0) | 2023.04.08 |
구원이란 무엇인가? (3) | 2023.04.06 |
삼손을 통해 본 유아의 거듭남 (0) | 2023.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