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상사

헤르만 바빙크의 칭의

오은환 2023. 5. 6. 01:30

칭의라는 용어를 다룬 책들은 많습니다. 

조직신학자라면 칭의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바빙크 신학은 칭의를 통해서도 신구약의 구원론까지 연결합니다. 

 

"중생은 믿음과 회개의 열매들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준다"(교의학 개요, p. 545)

 

바빙크는 지면을 할애하여 '의'가 무엇인지 묻고 답합니다. 

의라는 개념을 하나님에게서 찾기도 하고 법정적 용어로서 단순화 시키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이 의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키고서

이루었다고 만족해하는 그런 의와는 전혀 다른 의로서, 그보다 더 깊고 더 친밀한 의다.

그것은 신령하고도 온전한 의요, 아버지의 의와도 같은 의다(마5:2, 48)."(p. 556)

 

바빙크는 율법과 복음을 대조시키면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구약과 신약 시대의 의의 방법과 질이 다른 것처럼 묘사합니다.

 

"이 옛 질서도(구약시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긴 했으나, 그가 그의 율법을 

사람들에게 주시고, 그들을 이 율법에 대한 순종에 묶어 놓으시며, 그리하여 결국

그들의 행위에 대한 그의 심판에 따라서 그들을 벌하시든지 상을 주시든지 하시는

그런 방식으로 그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그 율법이 효과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음 안에서 

또 다른 정의의 질서를 세우신 것이다. 그 질서에도 사람이 스스로 굴복해야 했다(롬10:3)."

(p. 562)

 

"하나님의 의가 율법과 복음 모두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그 둘이 하나요, 

일치한다는 사실이 대두된다. 동시에, 율법에서는 의가 "이를 행하는 자는 살리라"는

법칙에 따라 나타나는 반면에, 복음에서는 의가 율법과는 관계 없이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악인을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롬4:5)는 법칙에

따라서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드러난다.

 

율법에서는 각 개인의 완전하고도 적절한 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완전하고도 

적절한 의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에 구체화되어 있는 바 하나님의 정의를 지킬 수도 없었고 또한 지키기를 원치도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를 선물로 베푸심으로써 그의 정의를

회복시키시고 확증시키신다."(p. 567-568)

 

"율법의 표준으로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므로 그것으로 판단할 때에 그 사람은 의인인 것이다."(p. 570)

 

바빙크는 구약 성도들에게 주신 율법과 이방인들이 그 율법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나

모두 동일한 형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의 삶을 신약 성도들과 비교함으로써
불행한 존재로 평가합니다.

 

"이런 점에서 신약 시대의 신자는 사실 구약 시대의 신자들보다 상당한 유익을 누린다.

...그들이 자녀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어린 자녀들이었고,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정하신 시기가

오기까지 종들처럼 후견인과 청지기들 아래 있었다(갈4:1-2, 3:23-24).

 

...우리는(신약 성도들은) 더 이상 (구약 성도들처럼)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으며(롬6:1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바 그 자유 속에 있다(갈5:1).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법칙이 더 이상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어진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며 또한 율법에 따라서 행한다. 우리 속 사람으로 그런 삶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율법이 신자들에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p. 581-582)

 

바빙크가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인용하는 구절들에서 큰 혼란함을 보게 됩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과거 불신자였을 때의 상태와 현재 신자였을 때의 상태를 혼합시켰으며, 

구약 성도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에 성령의 내주와 조명 그리고 힘 주심으로 율법을 

대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설정되지 않았기에 많은 혼잡함이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