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음녀'라고 부른다면 모욕적인 호칭으로 들립니다.
음녀는 정절을 배반한 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범죄자에게도 음녀는 모욕적이지만 성도에게는 치욕스러운 호칭입니다.
음녀와 성도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
(약4:4)
야고보는 성도가 음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음녀는 언약적 용어로서 성도가 언약을 파괴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였던 이방인들은 음녀라는 용어가 부적절합니다.
음녀의 호칭은 신자들에게만 붙일 수 있습니다(사57:3, 겔16:35, 시73:27).
* 그(음녀)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잠2:17)
음녀에 대한 정체성은 계시록 17-18장에 많이 등장합니다.
음녀 바벨론의 정체는 언약을 파괴한 집단으로 변질된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닌 근원적인 권위가 변질되어 많은 성도들이 미혹을 당합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을 형제들로 부릅니다(약1:2,9,19, 2:1,5,14, 3:1,12, 4:11, 5:7,9,12,19).
형제들 가운데서 세상과 짝한 자들을 음녀라 합니다.
이들 음녀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의 율법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어려운 자들을 향한 사랑을 나누지도 않습니다.
*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음녀가 된 자들은 교만하며(약4:6), 성령을 거스리며(약4:5), 두 마음을 품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지 않으며, 죄악을 보면서도 애통하지 않습니다(약4:8,9).
한 마디로 말씀과 성령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을 위한 변명으로 일관된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에게 두 가지 열매가 맺힐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열매만이 있지만(롬7:24), 성도들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을 따라 가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의 열매를, 옛 사람을 쫒아가면 썩어질 육신의 열매들을
거둡니다(갈6:8).
성도는 두 가지 열매 사이에서 고민하며 결정해야 합니다(갈5:16-17).
오늘날 구원론의 문제는 성도가 오직 한 가지 열매 곧 의의 열매들만 맺는다는 관점입니다.
의의 열매를 맺지 않는 자들은 처음부터 성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관점이 되지 못합니다.
사도들의 편지나 복음서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진리로 변질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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