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김형석 교수(1920 ~ )가 쓴 글입니다.
103세가 된 시점에서 삶의 여정을 간추렸습니다.
특별히 김형석 교수의 신앙이 어떤 빛을 감추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김형석 교수는 숭실중학교 시절(1학년)에 기독교를 접했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30대에 이르러 6.25 전쟁을 겪었고, 피난 시절 부산에서 본 사건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부산 피난지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교가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로
분열되는 전국 총회를 방청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때 나는 내 신앙의 모체였던 교회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느꼈다."(p. 26)
김형석 교수는 유독 교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의 성격과 연결되겠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동안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기독교의 교리보다는 인간다운 삶의 진리가
더 소중하고 그 진리가 복음이라는 사실을 체험했다."(p. 8)
그는 교단을 옮기는 것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긴 세월을 같이 보낸 유응기 목사는 예수교장로회 목사가 되었고, 신학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보수적 장로교 목사여서인지 내가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교적을 옮긴 것과 천주교와의 돈독한
관계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했다."
김형석 교수에게 영향을 미친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누구일까요?
그의 신앙은 다소 진화론적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 초창기에는 인류가 운명론에 안주했다. 그 안에서 지성을 갖춘 철인(哲人)들은
자유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기를 원했다."(p. 8)
김형석 교수는 자신이 만났고 영향을 주었던 목회자들을 평가합니다.
자유주의자 김재준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그가 끼친 해악을 보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만난 무교회주의자들과 성서주의자들 그리고 구세군까지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또 미국에 가서 만났던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에 대한 평가도 대단히 우호적입니다.
그들이 가진 신학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가져왔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1962년 봄 학기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P. 틸리히와 R. 니부어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회 신학계를 대표하는 K. 바르트의 특강에 두 차례 참석했다.
...그러나 평소부터 그의 저서와 사상을 접해왔고 적지 않은 관심과 영향을 받아왔기에
나에게는 그의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P. 틸리히와 더 가깝고 그의 학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신학체계와 내용이 내게는 많은 가르침과 신앙적 혜택을 주었으나 한국의 교계와
신학계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그만큼 수준이 높고 내용이 어렵고
방대했다. 독일 계통 학문의 조직과 체계성은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철학자들도 그를 20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평했다."(p. 35-36)
저자의 이런 성경관은 신구약의 통일성이나 역사성을 찾기 어렵게 만듭니다.
"아브라함 이전의 노아의 홍수나 에덴동산 같은 건 다 신화예요.
아브라함부터 인격신과 인간의 관계가 시작되는 겁니다."(김형석의 인생문답, p.170)
김형석 교수의 신학은 참으로 위험하며, 자유주의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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