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성령 약속과 성취(도지원 목사)

오은환 2023. 9. 8. 22:54

저자 도지원 목사는 성경을 많이 연구했고, 깊은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앞서 출간된 '성도가 꼭 알아야 할 언약' 책에서도 성령에 대해 많이 언급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난 작품과 맥을 같이 합니다. 

간략하게 이 책을 평가합니다. 

 

 

1. 구약에서 성령을 보지 못하는가?

저자 역시 구약에서 성령을 시작합니다만 매우 빈약합니다. 

창조의 영으로서 성령을 언급합니다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쩌면 개혁주의 성령론의 한계를 다시 보는 듯합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 - 성령이 구약 성도들 가운데 내주, 조명, 역사, 인도 -에서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율법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계속해서

연결하지 못합니다. 

 

"즉 율법은 성령의 열매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갈5:22-23).  왜냐하면 율법의 목적이 

성령의 열매에 있기 때문이다."(p. 247)

 

좋은 해석을 했지만 구약 성도들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성령의 열매들은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구약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시대에 성령의 임재는 그 범위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었다. 

성령은 선지자, 제사장, 왕같이 특수한 직무를 위해 주어졌다. 

모세는 민수기 11장 29절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p. 73)

 

성령의 내주와 은사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모세가 원했던 것은 70인 장로들이 받았던 예언의 은사입니다(민11:25). 

모세는 70인 장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은사를 받기 원한다는 개념입니다.

저자는 은사를 성령의 내주로 보는 실수를 범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곧 구약 성도들 가운데 성령이 내주 하심을 보지 못하기에 복음서를 통해

회심을 촉구합니다. 이미 성도가 되었는데 어떤 회심이 필요할까요?

회심이 아닌 회개가 필요합니다. 

 

2. 보혜사는 누구인가?

저자의 구약 성령론의 희미함은 나머지 부분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이 보낸 성령(아들의 영)으로 봅니다(요14:16). 

여기까지는 잘 보았지만 '원 보혜사'(저자는 '이미 계신 보혜사'라고 부름 - p. 56)를
육신을 입고 계신 예수님이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계신 보혜사는 누구일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 외에 보혜사라는 말이 쓰인 곳은 한 군데 더 있다. 

요한일서 2장 1절이다."(p. 96)

 

저자는 천상에서 중보기도하는 예수님을 '이미 계신 보혜사'로 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맥상 요한복음에 나오는 원 보혜사와는 무관합니다.

저자가 언급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 또 다른 보혜사라면,

원 보혜사 혹은 이미 계신 보혜사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보낸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킵니다. 구약 성도들 가운데 내주한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아버지의 성령 곧 하나님의 성령은 구약 성도들 가운데 내주하여 돕는 보혜사입니다)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이 보혜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육체를 지녔기에 모두의 마음에 함께 하며 돕는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고 성령이 오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육체로 계실 때는 보혜사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3. '약속하신 성령'이란 말은 구약에는 성령의 없다는 뜻일까?

1-2번에도 계속 언급했습니다만 저자의 견해는 구약시대에 성령의 내주가 없고, 오직

오순절에 이르러서야 성령이 내주 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은 단지 오실 성령에 대한 약속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구약성령론의 빈곤함에서 비롯됩니다. 조금 더 지혜롭다면 저자가 언급한

'주의 손'이 곧 성령임을 알 수 있듯이(p. 43), 성령의 여러 이름들을 찾아본다면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도 이런 틀에서 나오기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나지 않았기에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고 선언합니다(p. 127).

이 부분은 니고데모가 거듭났는지조차 몰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미 거듭난 자였습니다. 

 

다만 그가 몰랐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이 만든 장로들의 유전을 통해서만 들어간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과(물) 성령 안에서 보고 들어갈 수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저자는 큰 틀은 알고 있는듯 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려워합니다. 

매우 적합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구약 성도들을 성령과 무관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을 성령의 내주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없이는 구원의 국면들 중 어느 하나도 실제로 경험할 수 없다"(p. 124)

 

저자 도지원 목사는 이 시대의 개혁주의자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이 저자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령론이 세워지지 않은 가운데 신약만 잘 세우겠다는 것은 기초 없이 높은 건물을

올리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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