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어디까지 가야만 온전히 이루어질까요?
개혁주의 신학은 칭의에서 구원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한 번 의롭게 되면 성화가 더 이상 구원의 길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면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것과
일맥상통 합니다.
성경은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까요?
구원이 칭의에서 다 완성되어 성화가 더 이상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을까요?
아니면 성화가 칭의에 영향을 주어 그 효력을 정지시킬까요?
*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롬2:25)
바울 사도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성화와 칭의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화입니다(요일5:3).
할례와 세례는 거듭남을 외적으로 인친 성례입니다.
할례나 세례는 죄인이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인치는 성례로 '칭의'가 이루어졌다는
의식입니다.
칭의가 지속적으로 유효한 것은 성화 안에 거할 때입니다.
율법을 범하면(성화) 할례(칭의)가 무할례(아무 효력이 없음,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회개를 통한 회복이 필요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부분을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성화 없는 구원론을 만들었습니다.
행위 구원론이란 오명을 너무도 두려워해서 성경을 크게 벗어났습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을 자세히 관찰하면 많은 허점을 드러냅니다.
자살을 해도 구원을 받는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한 번 거듭난 사람은 신천지에 가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거듭나지 않았기에 권사나 장로가 되어 신천지에 빠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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