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분들과 계시록 QT를 하려고 찾다가 제일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묵상하는 사람들 QT'를
채택했습니다. 막상 열어보니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 7-17장까지가 생략되었습니다.
- 왜 생략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해서인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뚜렷하지 않습니다.
* 신학적으로 확고한 틀이 안 보입니다.
* 독자들에게 선택을 맡깁니다.
* 적은 분량으로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없다면 '요한계시록'만 한 권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한 권으로 편집함)
여섯째 인 재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책은 어떤 관점을 지녔을까요?
여러 재앙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재림이 일어났다는 관점이 안 보입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여섯째 인 재앙이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재앙이 더해질수록 그 규모와 강도 그리고 범위가 확대됩니다.
여섯째 인을 뗀 후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우주적 격동이 일어납니다.
해가 검어지고 달은 붉어지며, 별이 떨어지고 하늘은 붕괴됩니다.
모든 산과 섬은 제자리에서 이동합니다(계6:12-14).
그래서 재앙을 받는 사람들은 점점 더 극심한 환란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 이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대격변을
묵시적 이미지로 묘사한 것이라는 관점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재앙의 점진적 강화와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은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 믿음을 굳게 하고 인내하며 시험을 이겨 내야 합니다."(p. 182)
뭐가 문제일까요?
'묵상하는 사람들 QT'를 발행하는 '프리셉트 성경연구원'의 관점을 찾아야 합니다.
1. 재앙의 점진적 강화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심판 재앙은(인, 나팔, 대접) 점점 더 강도를 높이고, 그 범위가 확대됩니다.
하지만 이런 심판 재앙들은 성도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만 받습니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들이 이스라엘이 아닌 애굽 사람들만 받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 문제는 여섯째 인 다음에 등장하는 나팔 재앙들의 강도가 더 강하다는 논지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가운데 여섯째 인 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여섯째 인은 재림의 나팔이 울린 후 곧바로 나타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입니다.
본서는 이런 기본적인 틀을 놓쳤습니다.
여섯째 인에 등장하는 악인들이 재림하신 주 예수님과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을 보며
두려움에 쌓여 있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계6:15-16).
2. 여기서 상징적 해석을 할 만한 것이 있는가?
재림과 함께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을 사회적, 정치적 격변으로 해석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하늘이 떠나가는 것, 천체가 고유의 영역을 벗어나 격변을 일으키는 것,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 등 이런 것들을 사회, 정치적 격변으로 생각하는 것이 재림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 재림의 상황과 배경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결과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종말장은 해와 달과 별들의 격변과 함께 인자가 오시는 모습을 드러내며
(마24:29-31), 베드로 역시 하늘이 떠나가며 천체의 격변을 이야기합니다(벧후3:10).
히브리서 역시 지구와 하늘의 흔들림을 말씀합니다(히12:26-27).
상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3. 천체의 대 격변을 성도들이 이겨내야 할 것들인가?
천체의 대 격변을 사람들이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성도나 악인이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천체의 대 격변을 겪는 자들이 악인들이라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일곱째(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자마자 성도들은 모두 부활하여 휴거 되는데 천체의 대 격변을
보며 두려워하겠습니까?
본서는 대환난과 심판재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대환난을 통과하기 위해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만 심판재앙을 이겨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심판재앙으로부터 구별되어 보호받기 위해 인 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계7:1-8).
프리셉트 성경연구원에서 발행한 큐티 책이 더 유용하려면 바른 신학적 관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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