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벗어나>라는 책을 통해 박옥수 목사의 구원관이 어떤 것인지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비교적 최근의 작품으로(2022년 저술) 저자의 주관이 잘 나타납니다.
이 책은 설교집으로 보이며, 같은 말과 주제가 반복됩니다.
1. 율법이란 무엇인가?
저자 박옥수 목사는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해석에 있어서 결함이 있습니다.
개혁주의 목회자들 역시 유사한 결함을 지닌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학자들이 그런 프레임을 설정했기에 사실상 <구원론>의 불완전함을 평생토록 지녔습니다.
저자는 새언약과 옛 언약의 동질성은 보지 못하고 전혀 다르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31:34).
첫번째 언약에서는 인간이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새 언약에서는 인간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한다고 하셨습니다."(p. 31)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인간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오늘도 성경을 잘 모르는
목사님들은 십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계명을 쳐다보지 말라고 궤에 넣고 뚜껑을 덮으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법이 열려 있으면,
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p. 134)
"율법으로는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지금도 율법을 지키겠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다 거짓말
입니다."(p. 136-7)
박옥수 목사의 순수했던 초기 신앙은 성경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저자가 놓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은 율법만 주고 그것을 지킬 만한 힘은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구약에서 성도들 안에 내주하는 성령을 보지 못했습니다.
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본 구원
이 책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설교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는 강도만난 자를 이 땅에
살아가는 <죄인들>로 보고,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이라 주장합니다.
강도만나서 거의 죽게된 자는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논지입니다.
강도만난 자는 사마리아인의 손끝에만 의존할 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눅10:33-35)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부 구원자인 사마리아인이 했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은 누워있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인 예수님이 하십니다."(p. 33)
"사람들은 자기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강도 만난 자가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하는 피구원자입니다."(p. 205)
저자 박옥수 목사는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바른 해석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3.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는가?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에 대한 해석 역시
문제가 많습니다. 저자는 이런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냥 들으면 별 문제 없는이야기 같지만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영생은 인간이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자신이 노력해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라 기록되었고, 그것을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은 율법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고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p. 197-199)
두서 없는 해석입니다.
개혁교회의 많은 목회자들 역시 이런 패턴을 따르거나 구원론에 대한 체계적인 프레임이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힘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셨다는
구약의 말씀을 알지 못함에서 이런 파탄이 일어난 것입니다(신30:6).
(저자의 관점으로 보면 구약에서는 거듭남이 없다)
박옥수 목사의 구원론은 개혁주의자들의 아픈 곳을 찌르기도 합니다.
저자 박옥수는 개혁교회가 늘상 한탄하는 <의로워진 죄인>이란 신학에 돌을 던졌습니다.
성도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는 주장은 바른 관점입니다.
다만 의인은 죄를 짓지 않기에 회개가 불필요하다는 크게 잘못된 관점입니다.
박옥수 목사나 개혁주의 교회나 신학자들이나 천주교나 구원론에 관하여 완전한 교리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구원론 즉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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