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왜 할례가 아닌 세례를 주라 하는가?

오은환 2025. 11. 9. 00:37

구약시대에는 이방인이 유월절 절기에 참석하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합니다(요1:29).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장차 죽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방인이 할례를 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하는 예식입니다.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합니다(행15:1).

 

이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하여 사도들과 장로들 그리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다같이 모여 '예루살렘 회의(총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여러가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행15:2, 7).

할례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구약적인 요구사항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과정 자체가 생략되어 있지만 만장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최고의 신학적 지식을 가진 바울의 해석이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울은 할례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거듭남(새로운 탄생)'을 보았습니다. 

 

*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6:15)

 

그러면 왜 할례 대신 세례를 주라 했을까요?

아이의 살을 잘라내는 할례는 큰 고통이 따르는 예식입니다.  

반면 물세례는 외적인 고통이 거의 없습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방인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 삼는 일은 반드시 성령으로 세례 받음이 따라야 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습니다.

(롬8:16, 고전12:3)  

물세례는 성령세례 받은 자들이 공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성례입니다. 

 

왜 예수님은 구약처럼 할례를 주라 하지 않고 세례를 베풀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 누구기에 이런 구원의 큰 성례를 바꿀 수 있을까요?

구약시대에 할례를 받은 것은 예수께서 장차 십자가에서 흘릴 보배로운 피에 참여함으로써

의미가 있다면 신약의 세례는 이미 피흘림이 끝났기에 할례의 역할은 끝났음을 선언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할례라는 예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세례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이미 할례를 받았었지만 다시 세례를 받습니다. 

과도기에 있던 바울이나 사도들은 두 가지(할례와 세례) 모두를 받은 것입니다. 

 

*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22:16)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부족했던 초대교회 유대인들은 혼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깊은 지식을 가진다는 것이 인간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누가 세례에 대한 방법으로 심각한 갈등이 표출된다면 우리는 바울처럼 해야합니다.

 

"약식으로 물을 붓는 세례나 온전히 물에 잠기는 침례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음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6:15절의 의미를 재해석)

 

외적 의식인 할례나 세례는 본질인 거듭남을 드러내는 예식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항상 본질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외적인 예식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교회 앞에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