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학자들은 바울신학 연구에 전념할까요?
제가 총신신대원을 졸업할 당시 바울신학 담당교수님으로부터
육천 권의 바울신학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접한 책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바울신학에 매료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누구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구약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누군지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갈1:13) 가졌던 성경이해(신학)가 어떤 것인지를 알면,
서신서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난해한 로마서, 갈라디아서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바울의 출생지인 길리기아 다소에서의 생활과(헬레니즘 문화와 철학),
예루살렘으로 유학와서 가진 사상들까지(헤브라이즘) 두루 찾아나섰습니다.
결국 원래의 유대교와 바울에게 뒤섞인 유대교를 분간하면서 바울을 알아가려 했습니다.
참 어렵지요???
육천 권의 책이 괜히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에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신학자들은 바울과 유대인들이 이런 고백 속에서 절망하며 살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시카고에 살던 촌놈(스스로 그렇게 말함)이, 고등학교 시절까지 외국인을 한 번도
못보았다고 했던 'E.P. 샌더스'가 신학을 전공하면서 이런 주장을 바꾸었습니다.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참고)
"유대인들은(구약 성도들은) 절망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은혜 아래에 살았다"
이 한 마디에 세계 신학계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샌더스 이후 롬7:24절의 <나>를 회심 전 바울로 보는 견해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또한 한국과 미국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신음 소리라는 견해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롬7:24절에 대한 이해는 결국 구약성경 전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로 연결됩니다.
지금처럼 바울신학을 연구해서는 유익하지 않고 온전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유대교에 갇혀서 장로들의 유전(율법)을 준수하며 얻으려했던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따랐던 거듭난 자의 삶으로 회귀했던 것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만
서신서와 구약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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