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초림 장소는 예루살렘 근처 베들레헴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예언처럼 베들레헴은 초라하고 매우 작은 동네입니다(믹5:2).
성경을 가르쳤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이 동네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메시아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마2:4-6).
그런데 예수님이 어디로 다시 오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오시기에 굳이 예수님을 찾아갈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떤 곳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특정한 장소로 지정된 듯 보이기도 합니다.
*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슥14:3-4)
혹자는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감람산 위로 재림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 주장하면서 재림 후 예루살렘을 세계의 수도처럼 생각하려 합니다.
위의 구절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육하원칙 아래서 정리해 봅니다.
1. 누가(Who)
여호와께서 나가서 이방 나라들을 치십니다.
여호와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성부일까요? 성자일까요? 아니면 두 분을 함께 부르는 것일까요?
여기서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구약의 많은 곳에서 주의 날에 성부께서 악인들에게 나가사 친히 진노하심을 갚겠다 했습니다.
*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사40:10)
신약에도 성부께서 예수님의 재림 때 함께(살전4:14) 오셔서,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을 알려주십니다.
* ...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계1:4,8, 4:8, 딤전6:15)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차 오시겠다는 말만 기억하고 너무 쉽게 성자 예수님이라 단정합니다.
그러나 재림의 때에 삼위 하나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각각 하시는 일이 다를지라도 성자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오십니다.
2. 언제(When)
본문에서 가리키는 <그 날>은 여호와의 날(슥14:1)로 주의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
온 땅을 심판할 날입니다.
또한 그 시점은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하는 날입니다.
연단의 시간이며, 현실적으로 성도들의 모든 권세가 깨어지며(슥14:1), 포로로 끌려가며(슥14:2),
수치를 당합니다.
3. 어디서(Where)
스가랴는 성도들이 고난 당하는 장소로 이스라엘 혹은 예루살렘을 지명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보면 온 땅에 흩어진 이방인 성도들도 이러한 수치와 억압을 당하게 됩니다.
주의 재림의 때에는 적그리스도의 압제 아래서 성도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엄청난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성도들의 애타는 간구함을 들으시고(히9:28), 결코 늦지 않도록 적절한 시간에 <반드시>, 그리고 <속히> 오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위시하여 세계 모든 나라에서 대 환난의 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4. 무엇을(What)
성부께서 재림의 때에 예수님과 함께 오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아들의 영광스런 혼인잔치를 위함입니다.
방해되는 악인들을 멸하시고, 의인들에게 상주시기 위함입니다.
5. 어떻게 (How)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개입하십니다.
그 시기는 그의 백성들이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위급한 상황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개입하였고,
이스라엘은 급반전 속에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재림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부와 성자께서 오십니다.
그 모습이 마치 구약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고난의 현장에 임한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6. 왜(Why)
왜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실까요?
아들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성도들을 보호하며 악인들을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재림의 때에 성부와 성자의 오심은 분명합니다.
반드시 오신다고 계시록은 처음과 마지막에 기록하고 있습니다(계1:1, 22:6,20).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예루살렘 감람산 위로 임하실 것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반드시, 진실로, 속히 오심>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곁에 있던 천사들이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라가신 그 모습대로 오신다고 했습니다(행1:10-11).
그러나 어느 특정한 장소로 올 것이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볼 수 있게 임하기 때문입니다(마24:27,30, 계1:7).
특정한 장소로 임한다는 주장이 비밀스런 재림을 주장하는 자들의 미혹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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