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금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루터교회는 매우 좁게 봅니다.
예수님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의와 진리로 한정해서 봅니다.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그러나 개혁교회는 매우 넓게 접근합니다.
인간전체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 정의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접근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성경을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그리고 바울이 본 하나님의 형상비교입니다.
1. 아담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외적인 형태와 더불어
내면에 하나님의 충만하신 신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성령의 내주를 통해 신성의 충만한 성품들이 함께 하심입니다.
2. 예수님
아담에게 이런 추론이 가능한 것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의 상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지음을 받은 아담처럼 원죄가 없으시며,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눅2:40) 출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첫 아담을 통해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하심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처럼 원죄가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함으로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골1:15).
마치 최초의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예수님의 육체 안에 <성령의 충만하심>이 함께 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9)
*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10)
3. 바울
바울은 첫 사람인 아담과 그의 후손인 인류가 가진 형상을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 합니다(고전15:47-49).
첫 사람 아담과 두 번째 아담 예수님도 모두 동일하게 흙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 우리의 영원한 목표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처럼 신령한 몸이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고전15:46)
그러면 바울이 보는 흙에 속한 현재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질그릇같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금 성령이 내주하는 것입니다(고전3:16).
예수님은 오셔서 죄인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구속의 선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예수님 그리고 바울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우리 성도들은 흙에 속한 형상을 입고 있지만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입니다.
불신자들은 깨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 안에 성령이 거하지 않습니다.
장차 우리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내주하는 성령이 그 일의 보증이 됩니다(고후5:5).
매우 심오한 보증으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 이해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라는 아주 중요한 틀을 바탕으로 볼 때
올바른 이해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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