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택함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특별한 사명을 위해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확대해석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작든지 크든지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1:15)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언뜻 보면 바울이 택함을 받은 것은 복음전파를 위한 목적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은 먼저 그가 구속을 받았고 성령이 내주하심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택함을 받은 자들은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보증이 될까요?
더 이상 구원에서 떨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오늘날 복음전파를 위해 부름 받은 목회자나 선교사, 사역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미국 교회의 수많은 사역자들이 변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이 타락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장로들의 자살 사건들이 메스컴을 오르내립니다.
바울은 천국과 부활에 대한 보증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믿지만,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크게 혼동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보증과 확신 사이의 혼란함입니다.
보증과 확신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두 가지가 항상 같이 다닌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이 내주하심이 곧 장차 올 구원의 보증입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동안 구원의 보증은 확신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반역하는 것 즉 성령 훼방죄를 지으면
성령의 내주는 소멸됩니다.
성령이 소멸된다는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성령 훼방죄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야한다는 책임감도 사라져갑니다.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5:19)
택함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하나님의 소명에서 나옵니다.
이런 택함도 결국 성령 안에 있을 때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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