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구원론 - 큰 틀에서 세워라

오은환 2015. 7. 24. 21:15

구원론은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분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서 다양한 각도로 조명할 필요가 있고,

어느 각도에서 조명해도 완전한 교리를 <가장 안전한 구원론>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 구원의 길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이나 후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태초부터 변함이 없습니다.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4)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2. 구원의 방법

 

 1) 시작

죄를 범하기 전 아담의 상황을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그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아담은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나무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 ...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 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삼하14:17)

 

에덴동산에서부터 구원은 구속을 전제로 주어졌습니다.

죄를 짓고부터는 구속이 전제가 아닌 실제로 실행되어야 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죄를 사하는 <구속>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하셔야만 화목하게 되며 동행함이 가능합니다.

구속은 하나님의 큰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구속의 제물되심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아담부터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속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룩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속함을 믿는 순간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2) 완성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 받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 됨은 <그리스도 안에 머무름으로 완성>됩니다.

또 다른 말로는 성령 안에 머무름입니다(엡4:30).

그리스도 안에서나 성령 안에서는 모두 동일한 의미입니다.

구원의 시작부터 하나님 앞에 서는 완성된 순간까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자들은 구원의 시작은 곧 완성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사실입니다만 그리스도를 떠나게 되면 그 약속은 유효하지 못합니다.

마치 출애굽의 백성들의 경우와 같습니다(히3:12-14, 4:1-2, 6).

 

3. 성령과 구원

바울은 성도의 신앙이 올바른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 확인을 요청합니다.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거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바울은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지 확인하란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믿음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안에 거한다는 말은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무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살아 있는 것이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요15:1-5).

 

구원은 이런 원리와 동일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는 교회들이나 선교단체들이 있는데 때로는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믿는다고 고백하는 순간 그의 구원이 완성된 것처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4. 구원의 견고한 틀 제시

바른 구원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틀이 크고 견고해야 합니다.

좁은 견해로는 결코 구원론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옛 언약 아래서나 새 언약이거나 구원의 길은 항상 동일합니다.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를 통해 구원론의 틀을 넓혀 보고, 자신이 가진 견해가

너무 협소하지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1) 구원 = 영생을 얻는 것

부자 청년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원받은줄 모르느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마19:17).

 

 2) 구원 = 천국에 들어가는 것

제자들은 영생을 얻는 것이 곧 구원을 받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침없이 질문합니다.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마19:25)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을 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것이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쉽게 말을 합니다(마19:23)

 

여러분은 한 번 신앙고백으로 천국으로 들어갔습니까?

아니면 가고 있는 중이며, 그 길에 보증을 받은 것입니까?

 

 3) 구원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사도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 하나님 나라까지 구원의 의미를 넓혀갑니다.

더군다나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 동일한 의미인것도 알려줍니다.

 *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19:23-24) 

 

한 번의 신앙고백으로 구원이 영원히 확정되었다고 생각하신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이 이런 넓은 의미를 대입해도 견고합니까?

한 번의 신앙고백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