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천상의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을 만난 후 요한은 거의 죽을 만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계1:17)
그런 요한이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대성통곡을 했을까요?
*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계5:4)
요한이 울었던 이유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성부의 오른 손에 일곱 인으로 인봉된 두루마리를 어느 누구도 펴거나 보거나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두루마리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이 두루마리가 무엇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상하게도 하늘보좌에 있었던 존재들 - 네 생물, 24장로, 천사들 - 은 이 두루마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예수님이 이 두루마리를 취하자마자(계5:8) 노래로 화답합니다.
*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계5:9-10)
요한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공생애 기간에 들었거나 베드로, 바울 등 다른 사도들의 계시를 통해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서 심판의 형벌이 있은 후 주의 재림을 알려주었기에 참고할 수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땅에서 왕 노릇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는
요한의 간절함이 담긴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임해서(계11:15), 현실적으로 큰 고통 속에 있는 성도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 원함을 보여줍니다.
계시록 2-3장에 묘사된 일곱 교회들의 대부분은 극심한 가난과 이단들의 집요한 공격,
삶의 터전에서 소외당함 등으로 힘겨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강력한 로마제국의 도미티안 황제로부터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요한 역시 이 박해에 의해서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으로 인한 하나님의 나라의 가시적인 도래는 너무도 절박한 소망이었습니다.
긴 시간이 흘렀갔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 성도들 역시 절박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요한처럼 주의 재림과 함께 나타날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간절히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의 눈물처럼 이 시대 교회 지도자들의 눈물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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