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구약 제사를 그저 동물의 피흘림으로만 봅니다.
동물을 죽여 하나님의 진노를 달랜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구약성경에 대한 무지함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와서야 비로서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전은 절대 구원이 없다고까지 하지요.
정말 심각한 상태입니다.
구약을 보는 틀이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구약을 깍아내려야 신약의 예수님이 크게 보이기에 자신들이 잘한 줄 생각합니다.
크게 잘못되었지요.
구약을 영광스럽게 보아야 신약을 더 큰 영광으로 보는데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 할례 = 세례
이런 자들은 구약이라면 무조건 저평가합니다.
할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할례는 하나의 의식이고, 세례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상징함으로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곧 세례라고 했습니다(골2:11).
이 말은 할례가 곧 세례라는 의미입니다.
할례가 예표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실체이고, 세례는 그 죽으심에 참여하는 의식이며 상징이 됩니다.
2. 제사 = 성찬
구약의 동물 제사는 동물의 죽음일 뿐, 하나님은 그래도 긍휼을 베푸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런 자들이 신약의 성찬은 의미를 높게 부여합니다.
사실 성찬이 없더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도 진리를 전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을 돕고, 은혜를 넘치게 하기 위해 성찬을 주셨습니다.
이천년전 예수님의 죽으심을 후대가 기억하고 연합하도록 성찬을 주신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 때 어린 양을 잡아 장차 오셔서 죽으셔야 할 예수님과 연합하도록 은총을 베푸신 것과
동일한 의도입니다.
동물 제사는 그저 동물의 피일뿐 이 그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 복음입니까?
그런 해석이라면 신약의 떡과 포도주는 그저 곡식과 포도일까요?
예수님은 이런 의식을 행하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의식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려는 학습 의도가 있습니다.
3. 올바른성찬
천주교에서 나온 종교 개혁자들은 성찬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성찬 문제는 결국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연결되었기에 논란이 증폭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네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천주교처럼 빵과 포도주가 직접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과
루터처럼 예수께서 빵과 포도주의 일정 부분에 있다는 어중간한 타협과,
쯔빙글리처럼 모든 것을 단지 상징으로 보는 견해와
칼빈처럼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재하여 연합에 참여한다는 견해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들은 칼빈의 견해가 올바름을 인정합니다.
루터교마저 칼빈의 견해가 더 타당함을 인정합니다.
동물 제사나 성찬은 모두 동일한 의식입니다.
실체 되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의식을 행할 때,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동물 제사나 성찬은 실체이신 예수님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모두 예표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다만 예수님 이전의 예표와 이후의 예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을 깍아내리는 자들의 모순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은 단지 동물이 흘리는 피로 보고,
신약의 성찬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보는 것은,
모순중에 모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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