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이야기 하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오신 성령은 풍성함을 제공하고(요7:37-39),
반면 구약에 나타난 성령은 희미한 가운데 역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의 성령은 세련되면서 능력있으며 결코 떠나지 않는 반면에,
구약의 성령은 갑자기 등장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떠난다고 느낍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처럼 인정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성령은 다른 존재일까요?
거기에 대해서는 다들 부인합니다.
성령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같은 분임을 보여줍니다.
왜 바울은 굳이 두 개의 다른 이름으로 성령을 표현했을까요?
이방인들로 구성된 로마 교회 교우들을 잘 이해시키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구약 이스라엘을 정결케 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증한 것을 예로 들어,
이제 오순절 이후부터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이방 교우들을 정결케 하고,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보증한 것을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한 가지 덤으로 알고 갈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육신이란 말은 사람의 육체를 말하려는 것일까요?
육체가 아니라 옛 사람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의롭게 되지 않은 부정한 상태로도 볼 수 있습니다.
육체를 단순하게 보이는 몸으로만 보면 우스꽝스러운 해석이 되고맙니다.
성도들은 육체를 벗어나 영에 거하는 자들로 보며, 육체를 경시하게 됩니다.
잘못된 해석이 빚은 해프닝입니다.
같은 의미로 히브리서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일하게 육체(사륵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히9:13)
여기서 육체 사륵스는 롬8:9절과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구약의 동물의 피가 구약 성도들의 몸(육체)만 정결하게 합니까?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은 죄를 짓는 곳이 몸(육체)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정신은 죄를 짓는 것과 상관없을까요?
여기서 육체란 바로 앞의 수식어처럼 부정하게 만든 죄된 몸을 의미합니다.
어떤 자들은 우리가 굳이 구약을 잘 이해할 필요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직도 옛 언약 아래서 기술된 복음서 이해의 좋은 도구가 되며,
구원론에 대한 일관성을 가져 흔들리지 않은 푯대가 되게 합니다.
신구약의 일관된 통일성을 볼 때 우리의 신앙은 더 견고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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