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네델란드)의 대표적인 두 신학자가 큰 논쟁을 했습니다.
17살 연상의 아브라함 카이퍼는 정치가이자 신학자입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유주의 신학이 침투하자 서로 다르게 싸웠고,
훗날 각각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대처했습니다.
또 두 신학교를 하나로 합하기도 했습니다.
철저하게 칼빈주의 신학을 고수하였지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랐고,
그러므로 강조하는 것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논쟁은 화란 교회의 개입을 불러 왔고,
교회는 신학적인 결론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신학지남, 2013년 겨울호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강웅찬 교수가 쓴 <카이퍼의 중생교리에 대한 바빙크의 반론>입니다.
부르심과 중생의 순서와 더불어 유아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카이퍼)과 언약신학(바빙크)의 방향에서
서로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결국 교회는 바빙크의 견해를 옳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두 사람이 제시하는 성경구절이 때때로 해석함에 있어서 온전하지 않게 보입니다.
아쉽게도 세분하지 않은 상태로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의 안타까움이 보입니다.
중생과 유아의 문제를 두 가지로 나누면 훨씬 더 온전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가 처음 믿음을 가질 때와 믿는 자들의 자녀들이 신앙을 가질 때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은 위의 경우중 처음 신앙을 접할 때를 주로 다룹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부모로부터 태어난 유아는 구약이나 복음서의 흐름을 따릅니다.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와 성령의 역사로 중생이 일어납니다만,
그 형태는 불신자의 처음 신앙 영접과 믿음의 자녀들이 신앙안에서 태어남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저자는 카이퍼를 신칼빈주의자로서 칼빈주의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지닌 자로,
바빙크를 개혁주의 신학을 충실히 반영한 학자로 결론짓습니다.
우리는 이런 패턴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누가 잘못되면 상대방은 잘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맞을 수도 있고, 둘 모두 틀릴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두 견해는 모두 온전함에 많이 모자라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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