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생동감있게 보면 더 새롭지 않을까요?
심히 아름다웠던 창조(창1:31),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섬세한 예술, 장엄한 현장 등이 보이십니까?
에덴동산 역시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접근했으면 합니다.
삼위 하나님에 관한 기사가 아담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아담을 만들 때 삼위 하나님이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세 번에 걸쳐 '우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삼위 하나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아담의 에덴동산 입성은 깊은 뜻이 담기게 보입니다.
동산 밖에서 만들어진 아담이 처음 본 존재는 누구일까요?
약간의 상상이 들어간다지만 아버지되신 성부 하나님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아담을 어떻게 에덴동산으로 데리고 갔을까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부모가 데리고 학교에 가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창2:15)
에덴동산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은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동쪽으로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명나무가 있는 길로 가신듯 합니다(창3:24).
생명나무 열매를 따서 먹게 하고 그 의미를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그 의식이 끝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며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추측입니다만 아마도 성부와 성자의 손에 이끌리어 아담은 에덴동산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성령님은 아담 안에 충만하게 거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넘치게 했을 것입니다.
마치 성육신 하신 예수님처럼 큰 은총을 주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9)
아담은 언제, 어떻게 언약을 맺었을까요?
아담과 삼위 하나님과의 언약식은 에덴동산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에덴동산의 유일한 문으로 보이는 동쪽 길을 따라 들어왔고, 곧바로 생명나무 길로 나아갔으며,
선악과에 대한 순종이 곧 하나님의 통치(나라)를 받는 백성이라는 언약식이 맺어지지 않았을가 상상합니다.
*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 하였느니라(호6:7)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도 삼위 하나님은 긴밀하게 논의합니다(창3:22). 아담은 언약을 깨뜨렸기에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됩니다. 성부의 얼굴을 뵙지 못하고 두려움이 엄습합니다(창3:8). 성자는 아담과 인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성령과 아담의 연합은 깨어졌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또 다른 언약을 준비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언약을 되살리려는 의식은 피흘림으로 이어집니다. 아담과 삼위 하나님과의 영광스러웠던 시간은 너무도 짧게 보입니다. 또 너무도 멀리 떨어져 아득히 잊어져가는 옛 이야기로만 남으려 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고향은 귀환본능을 자극합니다. 비록 에덴동산으로 가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하늘 고향을 찾게 만듭니다. 에덴동산은 하늘의 성 새 예루살렘을 반영하기에 그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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