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들은 바울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행함으로, 바울은 오직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 예수님
②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3:11) - 바울
문맥에 따른 종합적인 이해가 없으면 바울이 증거한 말씀들은 마치 모순처럼 보입니다.
③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 - 바울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서로 모순될까요?
③의 경우 바울은 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관점과 완전 동일합니다.
롬2:13절의 바울의 말은 많은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오직 율법의 입법자 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따라 살지 않는 자들은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이거나 신약의 이방인 신자라 할지라도 의롭게 되지 못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함을 경고합니다.
면밀하게 보면 바울의 말은 전혀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신구약 모두 동일한 조건입니다.
그러면 신자에게 있어서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예수님과 성령으로 인하여 거듭난 신자들에게 성령은 율법(말씀)을 조명하여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을
제시하고 도와 줍니다.
옛 언약의 이스라엘이나 신약 성도들은 성령의 조명 아래서 율법을 온전히 이해하며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롬2:13절은 그런 의미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따라 율법이 비춰질 때 그곳에서 온전한 사랑을 배우고 행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완성된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패턴을 따라 모든 상황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과 행동은 철저하게 성령 안에서 조명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하나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것들을 순종했는지 드러납니다.
성령의 따르지 않으면 육체의 소욕에 빠지고 썩어질 것들을 거두게 됩니다(갈6:8).
*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롬2:16)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율법을 행함이 곧 성도의 의를 증거하는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율법 이해는 완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 곧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5:14)
오해의 안개는 걷혀야 합니다.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으므로만 가능합니다.
그 믿음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합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는 곧 그의 계명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쏟아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의인임을 증거하는 열매가 됩니다.
*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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