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첫 사랑> - 오해가 진리가 될 수 있을까?

오은환 2014. 3. 4. 13:44

악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진리를 비춰주어도 거부하게 합니다.

악습은 진리를 죽이기도 하면서 복음과 상관없이 그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첫 사랑>에 대한 것이 어떻게 악습이 되며, 진리의 빛을 비추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어떤 욕 잘하기로 유명한 부흥사가 섬기던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얼마나 욕을 잘하는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습니다. 

부흥회 시간은 긴장의 시간이었고, 하루가 지나자 담임 목사님은 강사 섭외를 잘못했음을 시인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의 속죄와 헌금에 대한 이론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들은 자신의 부와 상응하게 헌금을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과 같이 소, 양, 염소, 곡식, 비둘기 등 제물의 차등을 두었습니다.

헌금하겠다고 하는 분위기가 시들하자 곧 바로 꺼낸 카드가 바로 <첫 사랑> 이었습니다.

 

<첫 사랑>을 상실하는 자들은 <촛대가 옮겨지는 화>를 당할 것이다고 선언합니다.

이런 당당한 말씀 앞에서 누가 자유롭겠습니까?

이상한 부흥강사들이 유용하게 뽑아쓰는 구절이 바로 계시록의 이 구절입니다.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1. 처음 사랑 = 처음 행위는 모두 동일한 의미

에베소 교회들뿐만 아니라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들은 영지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니골라 당>이라는 자들의 공격으로 교우들 중 일부가 복음을 버리고 타락한 길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소아시의 일곱 교회 지역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이집트, 안디옥 등 로마 제국에 광범위하게

퍼져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를 위협한 실질적인 이단은 사실 영지주의 하나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들은 복음이란 용어와 이야기로 가면을 쓴 채, 처음 복음을 받고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들도 니골라 당과 심한 격전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싸움을 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나도 니골라 당을 미워한다 - 계2:6>고 동질성을 부여하며

칭찬합니다.

 

처음 사랑을 상실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복음에서 떠나간 자들과 그 악한 교훈에 물들어 <다른 복음>으로 가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복음으로 가면 <촛대가 옮겨집니다>(계2:5).

즉 성령이 없는 자들이 됩니다(유1:19).

 

그러므로 그런 유혹에 직면해서 흔들리는 자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주님은 외칩니다.

 

2. 처음부터 들은 것 = 처음 사랑 = 처음 행위

요한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2:24)

영지주의자들의 심한 공격으로 미혹되어 떠난 자들을 경고하며, 아직도 그 교훈에 미련을 가진 자들을 향해

처음부터 들은 복음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자주 쓰이던 <처음 것>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처음 사랑은  단순하게 신앙의 감정적 상태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를 붙잡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머나 지역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빌립보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영지주의자들의 악한 교훈을 경고하면서

처음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대중들의 가치 없는 사색을 뒤에 버려두고, <처음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말씀>으로 돌아 섭시다"

 (속사도 교부들, J.B 라이트투트,  M.W 홀메스 공저, 이은선 역 p.175)

 

3. 나중 행위

처음 사랑 혹은 처음 행위와는 반대로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낫다고 해서 칭찬받는 두아디라

교회를 참고해야 합니다(계2:19).

이 말씀은 처음 복음을 받았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더 성숙해졌음을 알려줍니다.

씨가 뿌려지듯 말씀을 받은 자들이 <인내하여 - 계2:2, 19, 3:10, 눅8:15> 풍성한 열매를 맺어갔음을

칭찬한 것입니다.

처음 사랑 혹은 처음 행위나 나중 행위는 모두 복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4. 처음 사랑을 상실한 자들은 누구인가?

큰 실수를 범하는 자들은 에베소 교회 전체 즉 성도들 전체가 처음 사랑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해석상의 오해가 빚어낸 산물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처음 사랑을 상실한 자들은 니골라 당의 악한 교훈 즉 사탄의 교훈(계2:24)에 빠져서

처음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을 떠난 자들을 언급합니다.

그런 자들을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인 유다는 <성령이 없는 자 - 유1:19)라고 선포합니다.  

 

바른 성경적 해석이 성도의 삶에 자유함을 주고, 잘못된 교리나 주장들이 난무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교회를 더욱 더 단단히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