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
영생을 얻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해가 단순히 해프닝으로만 끝나지 않고 매우 심각한 상태로 빠지게 합니다.
단순히 구원만 받으면 된다고 믿기에, 죽기 직전 회개하고 돌아가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상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 번 입술로만 고백하면 구원이 끝까지 보장된다는 이런 확신은 성경을 왜곡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사실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을 보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서 잠시 신앙생활을 중단해도 하나님은 그 영혼을 책임지시기에 죽기 전에 불러서
<반드시 회개시켜>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성경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교회에 다니는 것을 보험에 가입한 것 처럼 위안삼게 만듭니다.
만일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천국은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 받을 자가 매우 적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합니다.
*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3-24)
*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19:23-24)
구원을 받는 다는 것 다시 말해 영생을 얻는 다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길이 매우 험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제자들을 비롯한 청중들도 잘 이해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거의 절망적입니다.
"누가 구원(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구원을 얻는 방법을 매우 간략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함을 이야기 한 후 가능한 방법을 알려 줍니다.
*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19:26)
구원에 대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만이 하실 수 있다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능> 함을 드러내는 표현법입니다.
*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죄인이 깨끗케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뿐입니다.
깨끗함을 입은 자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순서는 절대 바뀔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항상 공존합니다.
깨끗하게 된 자가 거룩하지 않을 수 없으며, 거룩함은 보혈의 피가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끗케 되었고,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이 받으심이 구원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영생(구원)을 얻는 것을 연구했습니다.
학자든 아니든 사람에게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한 관심사가 있겠습니까?
계시를 받고 선포한 자들까지도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1:10) |
카돌릭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개신교회들도 이상하리만큼 구원의 문을 너무 크게 열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잘못되고 혼란을 주는 이상한 구원의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보혈의 피로 깨끗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거룩하게 되며,
그 결과 새 사람으로 성령의 열매 맺는 것이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열매로 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의 행위의 열매가 아닙니다. 그 근원이 성령입니다.
신앙생활 했던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이란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구원의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괴상한 가르침은 중세시대로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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