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을 하면서 이런저런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님들을 보면서 희망을 보게 됩니다.
깊은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 바른 진리를 알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동일하게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학자들이 전해준 말씀뿐만 아니라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려는 모습에서
역동하는 성령의 사람이 이렇구나 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정도면 이젠 어느 정도 기반을 세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볼만 합니다.
그런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만일 틀린 경우라면 엄청난 신앙의 장애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진리에 가까이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만으로 인하여 넘어지게 하는 독극물이 될 것입니다.
부디 간청하기는 자신의 생각이 더 크고 분명한 진리들과 대치된다면, 더 노력하고 수정하여
올바른 진리로 나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토론하면서 제가 느낀 점들을 몇 가지로 적어보니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1. 첫째
복음서의 말씀들을 그 당시 청중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오순절 이후로 넘겨버리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거듭난 이야기를 비롯해서, 아직 옛 언약 가운데 있는 청중들이 성령의 조명 아래 있음에 대해(마6:23),
아버지의 성령이 <현재 내주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마10:20), 아버지의 성령이 제자들이나 이스라엘에게
옛 언약 아래서 <현재> 내주함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말씀(요14:17),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
(마7:11, 눅11:13), 산상수훈의 교훈들을 성령이 없었다고 가정 하기에 천년왕국 이후나 오순절 이후로 연기시킴 등..
사실 모든 복음서의 말씀들을 현재가 아닌 미래로 미루어 놓았고, 구약(옛 언약) 아래 있는 성도들과는 무관한
말씀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견해는 장로교나 기타 다른 교단들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교회가 가진
문제입니다)
2. 둘째
복음서가 이렇게 온전하지 못한 상태가 된 이유는 구약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구속 받았으므로 그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정확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사29:22)
아브라함만 구속 받은 것이 아니라 그 후손인 <야곱 족속 즉 이스라엘> 또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이 놀라운 구속의 효력을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구속으로 전락시켜서 구약 백성들을 불행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 어디로 보아도 그들이 불행했다는 이갸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너무 행복합니다(신33:29).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들을 여전히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습니까?
그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갈2:15)
에녹,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이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주장하는데,
하나님이 죄인과 동행하신다고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3. 셋째
구속함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한 발자국도 더 진전되지 못한 상태에 머무릅니다.
양자(롬9:4, 신32:6)되었는데도 <성령이 없는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예배를 드리는데도(롬9:4) 구약에 예배가 어디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더 헷갈리는 분들은 예배는 드렸지만 성령이 없는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무의미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가요?
믿음이 있었는데도 <결함이 있는 믿음이라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선진들의 믿음을 본 받으라 합니다(히11장).
질적으로 전혀 다르거나 신약성도들보다 한 참 떨어진 믿음이라면 그것을 본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혹자는 구약 성도들에게 성령이 함께 했지만 내주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기껏해야 몇몇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임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시절 성만찬 논쟁처럼 <떡> 이 무엇인지 논란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성령이 구약 백성들 위에, 주변에, 단체로, 성막에만, 아니면 잠시 잠깐만 임했습니까?
칼빈의 견해처럼 성찬을 행할 때 성령으로 임재하심을 명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구약 백성들의 몸이 곧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 알려주었습니다(고후6:16).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구약 백성들처럼 거룩하라 했습니다.
야고보도 구약 백성들의 몸이 곧 성전이라 말씀을 인용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엄격하게 말씀합니다(약4:5).
학개 선지자도 이스라엘 가운데 <계속해서> 아버지의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알려줍니다(학2:5).
스데반도 구약 백성들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곧 <성령을 거스르는 행동>이라 표현합니다(행7:51).
이사야는 시내산 언약 때 말씀과 함께 성령의 내주하시고 인도하심을(출23:20-23)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사63:9-14).
이렇게도 명확하게 나타내는데 실상 연구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것들을 거부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에 근거해서 성령이 조명하는 명확한 말씀들을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입니다.
( 이 부분도 장로교를 포함해서 대다수 교회들이 가진 결핍된 주장입니다)
4. 정리하면서
구약에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근간이 되는 구속함, 거룩함, 믿음, 죄사함, 거듭남, 성령의 내주와 충만, 열매(눅1,2장 참고), 양자됨, 예배, 기도,
동행, 의롭게 됨, 약속들, 언약들, 율법, 아버지의 성령 등이 모두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성도들에게 주어짐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의 것을 주시는 것이 못 마땅하다고 보십니까?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6)
수백층을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면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일생을 연구해서 뭔가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부실 건물로 판명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이 말은 말씀을 연구하는 저와 모든 동역자들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킹제임스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합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하늘에 전달된다하더라도 그 기초로 나온 결과들이 허무하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길바닥에 버려집니다. 온전한 말씀을 우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리니 이젠 다른 성경을 공격하지 마시고, 가진 성경으로 내실있는 열매들을 거두는 일에
전념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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