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신앙고백서

신음하는 개혁주의

오은환 2019. 9. 16. 07:48

개혁주의가 신음하고 있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황당한 주장들은 성경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구체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어떤 주장들이 문제가 될까요?

개혁주의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신구약은 각각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

   - 이런 주장은 예표와 실체가 하나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구약은 종으로, 신약은 자녀로

     구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사상입니다.


구약은 중생(거듭남)이 없다.

   - 거듭남이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곧 그리스도 이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으로 다원주의의 뿌리가 됩니다.


구약은 중생이 없기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거나 들어갈 수 없다.

   - 요한복음 3:3,5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어리석은 자로 만듭니다.


구약은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고 단지 위에 혹은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단체적으로만 임재했다.

   - 성령의 개인적인 내주가 없이 신앙생활 했다는 주장은 오늘날 교회가 성령 없이도 운영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줍니다.


성도가 자살을 해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 한 번 중생(거듭난 자)한 자는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신학에 도취된 결과물입니다.

    성도는 결코 자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은 성령의 인도하심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령의 내주가 없이도 은사는 존재할 수 있다.

   - 구약에서 사사들이 성령의 내주가 없이도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성령이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심을

    근거로 내주와 은사를 주신다는 기본적인 생각마저 없는 주장으로 이런 잘못된 것들을 아직까지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예표로 주어졌기에 죄사함이 완전하지 못하다.

   - 결국 이런 주장들은 구약 백성들의 죄사함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결론짓습니다. 예표를 통해 주어진 완전한 죄사함을

     주장한 웨스트민스터 신조와는 전혀 다릅니다. 바울이 인용한 다윗과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었다는 로마서 4장의 

     죄사함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성도는 의로워진 죄인이다.

   - 이런 주장 역시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복음에서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의인이란 개념이 단지 죄를 안 짓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산물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정결하심과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한 상태를 의의 상태라 하는데, 현실적인 죄 개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의를 거부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성전에만 계셨다.

   - 이런 동떨어진 주장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이나 이사야 그리고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성전이 성도들의 현재 상태를 반영한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한 결과 엉뚱한 해석에 이른 것입니다(고후6:16, 약4:5).


성화와 견인은 구원과 무관하다.

   - 이것 역시 크게 잘못된 것으로 성경전체와 부조화를 이룹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위의 도표처럼 흐름을 지니지만 성화와 견인은 구원을 받는 유무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입니다.


위의 주장들이 개혁주의의 중심사상이 되면 큰 일 납니다.

성경전체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27. 신앙고백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요리문답의 유감  (0) 2020.09.23
모순  (0) 2019.09.17
웨스트민스터 신조로 본 종말론  (0) 2018.01.11
세례와 구원  (0) 2018.01.11
유아세례와 부모의 신앙  (0) 2018.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