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가 신음하고 있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황당한 주장들은 성경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구체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어떤 주장들이 문제가 될까요?
개혁주의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❶ 신구약은 각각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
- 이런 주장은 예표와 실체가 하나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구약은 종으로, 신약은 자녀로
구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사상입니다.
❷ 구약은 중생(거듭남)이 없다.
- 거듭남이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곧 그리스도 이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으로 다원주의의 뿌리가 됩니다.
❸ 구약은 중생이 없기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거나 들어갈 수 없다.
- 요한복음 3:3,5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어리석은 자로 만듭니다.
❹ 구약은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고 단지 위에 혹은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단체적으로만 임재했다.
- 성령의 개인적인 내주가 없이 신앙생활 했다는 주장은 오늘날 교회가 성령 없이도 운영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줍니다.
❺ 성도가 자살을 해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 한 번 중생(거듭난 자)한 자는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신학에 도취된 결과물입니다.
성도는 결코 자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은 성령의 인도하심의 결과가 아닙니다.
❻ 성령의 내주가 없이도 은사는 존재할 수 있다.
- 구약에서 사사들이 성령의 내주가 없이도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성령이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심을
근거로 내주와 은사를 주신다는 기본적인 생각마저 없는 주장으로 이런 잘못된 것들을 아직까지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❼ 구약은 예표로 주어졌기에 죄사함이 완전하지 못하다.
- 결국 이런 주장들은 구약 백성들의 죄사함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결론짓습니다. 예표를 통해 주어진 완전한 죄사함을
주장한 웨스트민스터 신조와는 전혀 다릅니다. 바울이 인용한 다윗과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었다는 로마서 4장의
죄사함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❽ 성도는 의로워진 죄인이다.
- 이런 주장 역시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복음에서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의인이란 개념이 단지 죄를 안 짓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산물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정결하심과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한 상태를 의의 상태라 하는데, 현실적인 죄 개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의를 거부한 것입니다.
❾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성전에만 계셨다.
- 이런 동떨어진 주장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이나 이사야 그리고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성전이 성도들의 현재 상태를 반영한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한 결과 엉뚱한 해석에 이른 것입니다(고후6:16, 약4:5).
❿ 성화와 견인은 구원과 무관하다.
- 이것 역시 크게 잘못된 것으로 성경전체와 부조화를 이룹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위의 도표처럼 흐름을 지니지만 성화와 견인은 구원을 받는 유무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입니다.
위의 주장들이 개혁주의의 중심사상이 되면 큰 일 납니다.
성경전체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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