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부분적으로도 잘 알아야 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부분을 조합해서 전체적인 이해가 형성될 때 온전한 신앙이 형성됩니다.
대표적으로 니고데모를 포함한 유대인 학자들은 전체적인 이해도가 한 참 모자랐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 한 사람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너희는>이란 표현을 통해 청중들을 가르치는
그들의 모자람을 드러내어 꾸짖은 것입니다(요3:11).
1. 예수는 믿어도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 있다?
이런 주장 자체가 얼마나 모순이 될까요?
예수를 믿으면 그 순간 성령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떤 의식이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내주와 성령충만의 차이점을 잘 모르면 헷갈려 합니다.
2.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괴상한 논리가 통용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성막을 보면 성소는 아무 때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제단에서 제사를 드린 후 물로 정결하게 씻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정결함을 받은 자만이 성소 곧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결함을 받아야만 거룩함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3. 성령의 내주가 없어도 은사는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더 황당한 주장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어도, 성령이 내주하지 않아도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기독교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어디서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성경을 벗어난 것으로 이단들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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