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은 주의 재림의 날을 구약과 연관하여 <주의 날 - 살후2:2, 벧후3:10> 혹은 <하나님의 날 - 벧후3:12>로
즐겨 사용합니다.
주의 날 앞에 붙는 여러가지 수식어들도 비슷하게 사용합니다.
주의 날이 <도둑같이 - 살전5:2, 벧후3:10, 계16:15> 임한다는 표현도 동일합니다.
주의 재림을 또 다른 말로 <강림 - 살전4:15,16, 살후2:1>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부활체로 변화되어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 서는 모임을 휴거라 합니다.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의 <모임>에
관하여(살후2:1)
재림을 준비 할 때 성도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미혹>을 주의하는 것입니다.
거짓이 진리와 생명으로 미혹하는 것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성숙한 신앙을 갖추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번 당부를 합니다(마24:4,5,11,23,24).
바울 역시 주의 날을 언급하면서 제일 먼저 <미혹>되지 말것을 당부합니다.
*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살후2:3)
또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큰 미혹으로 인하여 대규모로 <배교>가 있을 것을 징조로 보여줍니다.
*...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살후2:3)
미혹으로 인한 대 배교를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대 배교를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맞먹을 정도로 크게 다룬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 ...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2:3)
미혹으로 인한 <대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에게 나타날 큰 징조들
입니다. 이 둘은 우리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징조 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맞이합니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신앙을 <외적으로 시험하는 자>가 됩니다.
이러한 외적 시험을 이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미혹으로 인한 <배교>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신앙의 <내적 시험> 입니다.
내적 시험을 이겨야만 연이어 다가오는 외적시험도 견딜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미혹으로 인한 배교를 <음녀>가 집행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음녀의 또 다른 이름은 큰 바벨론과 큰 음녀로서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입니다(계17:5).
바울과 요한의 가르침처럼 음녀와 적그리스도는 같은 시대에 우리 성도들을 미혹하는 내적, 외적
시험자입니다(살후2:3).
* ...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계17:3)
음녀와 배교는 그 이름이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자들이 그 신앙을 <버리고> 돌아간 자들의 이름입니다.
*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73:27)
* 그는(음녀)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잠2:17)
바울은 이런 미혹으로인한 배교가 마치 적그리스도의 등장처럼 뚜렷하게 드러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깨어 있는 자들은 <대 배교>가 일어나며, 그 일이 미혹하는 큰 음녀에게서 가시적으로 드러남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큰 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대 배교를 행하려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음녀는 진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연합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기에 헌신짝처럼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희생시키고 연합으로 큰 집단을 이루는 모임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이 제공하는 넓은 길 즉 진리에 대한 희생이 없는 평화는 <다른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들은 넓은 길로 가고 싶어 합니다.
좁은 길은 매우 불편하기에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마7:13-14, 눅13:24).
진리의 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야 하기에 그에 따른 큰 희생이 수반됩니다(마13:44-46,
요일3:16).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 할 부분은 적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음녀입니다.
진리에 대한 미혹으로 대 배교가 일어나는 것은 강 건너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사랑이 결여될 때 미혹은 쉽게 일어납니다.
*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0-12)
진리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은 진리 위에 신앙을 세우지 아니하고,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 위에
세우려 애씁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기준이 되어 견고한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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