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옷을 빠는 복된 신앙(계22:14)

오은환 2014. 4. 10. 20:30

 

어느 시대나 옷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옷을 통해 신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도 예외 없이 옷을 통해 깨끗함과 더러움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22:14)

 

깨끗한 옷을 입은 자들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습니다.

즉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유업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옷을 <빨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들이 자기 수양을 통해 깨끗하게 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옷이 깨끗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함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요14:6, 행4:12).

 

 

죄인이 회개를 통해 다시 깨끗함을 받아 흰 옷을 입게 됩니다.

흰 옷은 항상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흰 옷은 죄에 의해 더럽혀지기도 합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유1:23).

 *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계3:4-5)

 

 

구약 성경에도 이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6).

 

 

옷이 더럽게 됨은 죄와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구약의 부정한 자는 원래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언약 백성들은 정결한 자로 명명합니다.

 

그러나 언약 백성들도 여러가지 부정한 결례를 행하면 부정한 자가 된 것처럼 취급하며,

다시금 정결 의식을 통해 정결한 자로 태어납니다.

 * 유출병 있는 자는 그의 유출이 깨끗해지거든 그가 청결하게 되기 위하여 이레를 센 후에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그의 몸을 씻을 것이라 그러면 정하리니(레15:13)

 

 

이런 의식들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들을 더럽혔던 의식들 즉 마치 부정한 사람들이나 죄와 접촉하여

더럽혀 진 것을 회개하는 의식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약백성들은 구별된 삶을 살았기에 구별되지 못한 행동들은 죄로 취급 받습니다.

이런 구분은 폭 넓게 보면 이방인과의 구별된 삶을 살게 합니다.

같이 접촉하지 못하고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런 구분들의 기준을 모두 허무셨습니다.

부정한 이방인들을 다 정결케 하셨기 때문입니다(행10:15, 엡2:13-16).

 

 

그러므로 신구약의 옷을 빠는 행위는 <정결한 자들이 죄를 범했을 때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은 옷을 빠는 행위와 더불어 몸을 씻는 행위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합니다(레15:7,10,11,13, 16:26).

나아만 장군이 흐르는 물에 일곱 번 씻은 것도 다 율법의 기록대로 한 것입니다.

 *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레14:7)

나아만 장군이 다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모르지만 나아만의 순종은 그 자신의 부정함을 회개하는 행위입니다. 

 

회개가 없는 자들은 그 부정케 됨 속에서 망하게 된다는 것이 구약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 속에서도 동일한 진리가 됩니다.

회개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회개가 필요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회개의 요청을 거부한 자들에 대해 악인들과 동일하게 심판하시겠다 합니다.

 *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2:16)

 

회개를 하지 않음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무시하는 것의 외적 표징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을 무가치하게 여기므로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기지 않은 증거이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욕되게 하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회개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언급합니다.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 perish> (눅13:3,5)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의 깊음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모두 상징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매우 잘못된 견해입니다.

 

구약성도들이 회개의 표징으로 짐승을 잡아 반복해서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회개하는 일은 반복되어집니다.

회개는 인격적인 돌이킴을 통해 온전케 되는 나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