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내가 너의 아버지다

오은환 2020. 4. 15. 13:50

주기도문을 연구한 신학자들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고 했는데

다름아닌 '아버지'라는 용어입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으며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놀라운 사건이라 호들갑을 떱니다.

때때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용어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요8:19).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되심을 여러 번 알려줍니다(출4:22, 신32:6).

때로는 무심한 아들을 원통하듯 부릅니다.

 

*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1:6)

 

문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복음입니다. 

진노하며 멸망받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밝혀주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이런 중심을 벗어나면 구약의 가치는 사라집니다.

 

신약성경 역시 진노의 자식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죄를 담당하고 죽으심을 믿으며, 성령이 내주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 곧 의인으로

삼아주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아버지란 용어를 잘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아닌 분들도 때로는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들을 극존칭으로 부릅니다.

 

* 엘리사가 (엘리야)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왕하2:12)

*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왕하13:14)

 

위대한 선지자를 향해 아버지란 호칭을 반복하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란 호칭은 종종 사용된 용어로

보입니다. 선지자에게 보낸 이런 호칭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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