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교 개혁자들을 통해서 많은 면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카톨릭과 맞서 싸운 루터의 용기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칼빈의 사려깊은 생각들은 우리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 이후 끊이지 않고 신학의 틀을 발전시켜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온전한 해석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늘날까지 발전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았음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구약을 이해함에 있어서 온전함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또한 해석상의 많은 오류들을 내포합니다.
서철원 교수의 <성령 신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도 중요한 부분에서 결함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큰 틀에서 오해되는 것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전에는 성령 강림이 없었고, 불가능하였다(p.69)
누가복음은 성령충만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세례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 그의 아버지 사가랴, 마리아, 시므온, 안나 선지자, 세례 요한, 예수님 등이
성령에 충만하다고 증거합니다.
② 예수께서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p.69)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이것을 그에게 알려준분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보혜사에 대해 알려주면서 그 분은 현재 이스라엘 중에 거하며, 앞으로 내 이름으로 올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요14:17)
③ 구약 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임재 즉 거주는 가졌지만, 각자가 성령의 내주는 갖지 못했다(p.69)
바울은 고린도 후서 6:16절에, 야고보는 야고보서 4:5절에 구약 백성들이야말로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절을 이방인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합니다.
④ 회막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은 백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주하심을 말하며, 하나님의 거주는
성령의 임재이다(p.69)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전에 거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행7:47-50), 솔로몬, 바울 사도(행17:24)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⑤ 신약교회는 구약 교회와는 달리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길이 할례받음으로 되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
(신약교회의 하나님의 백성 됨은 믿음으로 된다 ⇔ 하지만 구약교회는 할례를 받음으로 백성이 된다)
신구약 성도들의 구원형태가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p. 67).
구약 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내주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할례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형태의 구원이 가능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논란의 진원지가 됩니다.
바울은 할례라는 것을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을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 그가 할례의 표를 가진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롬4:11)
할례라는 것은 그가 가진 믿음을 외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이나 구약 백성들은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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