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미숙한 구원 경로(2) - 사마리아

오은환 2014. 5. 12. 16:58

교단이 갈라져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지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순절 계통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 받음을 주목합니다(행8:4-25).

그들은 빌립의 전도를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믿습니다.

그 결과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임함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받게 됩니다.

 

이 부분을 눈여겨 본 오순절 계통은 믿음을 가진 것과 성령 세례를 받는 시점을 서로 다르게 설정합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제2의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개혁주의는 이 부분에 대해여 아주 엄격하게 다룹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받게 되는 것으로 오순절 계통의 제2의 축복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정죄합니다.

이런 교리적 바탕으로 해석하면서 많은 부분을 잃게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은 것은 복음이 아니라 빌립이 행한 기적을 보고 믿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고 그 가치를

폄하합니다. 서철원 교수의 <성령 신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았으니 예수를 믿었다고 할 수 있으나, 성령이 아무에게도 내리시지

않았으니(행8:16)  그들이 바로 예수를 믿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그들이 주 예수를

믿었다고 하기 보다는 빌립을 더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전에 마술사 시몬을 믿은 것처럼,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기적들을 행하는 빌립을 믿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의 믿음도 바른 믿음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빌립의 기적들로 인해 그냥 미신적으로 믿은

기적 신앙이었고, 실제로 예수 믿었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이 사마리아인들이 세례 받아도 성령 받지 못한 이유이다.

(p.95)"

 

이런 서철원 교수의 주장은 본문 자체에서 반박이 됩니다.

첫째,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미 성령(구약에 보내신 아버지의 성령)을 받았기에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큰 기쁨>

얻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5:22-23).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런 기쁨을 주셨습니다. 

 

 * ...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리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에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출4:14-15, 마10:20)

 

둘째, 예루살렘 교회들의 생각은 사마리아가 말씀을 <받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행8:14)

 

두 사도가 내려가서 한 일은 다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받기 만을 기도했습니다(행8:15)

 

서철원 교수의 주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보입니다.

사도들 이외에는 성령이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후 계속되는 빌립집사의 전도여행은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사도행전 8장 후반부에 나오는 이디오피아 내시 역시 말씀을 받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 행8:39> 고국으로 갑니다.

 

여기서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온 것이 (행8:27) 자기 의지의 산물입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입니까?

이미 내시에게는 구약 성도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성령>이 내주했습니다.

그런 그가 말씀을 보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오순절 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역사는 과도기적 신자들에게는 성령 받음이 두 번임을

보여줍니다. 마치 이들은 구약의 희생제사를 드렸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단 번에 드려진 희생제사를

경험한 것과 같습니다.

오순절 날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오직 한 번의 성령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세례를 받습니다.

오순절은 그 분깃점이 됩니다.

 

개혁주의 해석이 이렇듯 온전하지 못한 것 같이 오순절 계통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이미 아버지의 성령 안에서 살아오고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에게 임한 기쁨과 세례를

성령이 없는 산물로 취급하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렇듯 이 문제는 양쪽 다 큰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에베소 교회에서 바울이 만난 12 제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12 제자들이 성령이 없이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들이 몰랐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성령입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이미 아버지의 성령을 받았기에 복음을 받아들였고,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거나 한쪽만 알게 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교단이 나누어지고, 교회에 당이 만들어지며, 수없이 많은 분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비단 성령에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분란이 일어남을 역사적으로 배웠습니다.

바른 진리에 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