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산 목사의 주장에는 몇 가지 큰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다 같이 살펴보고 바른 신학을 정립했으면 합니다.
1. 1:7절 땅의 모든 족속이 애곡하는 대상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성도들인가?
- 슥12:10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 - 재림 때의 애곡과 연결
- 성도들이 재림 때 어떤 상황에서 들림 받는지를 안다면 이런 표현은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의 형상과 보좌를 묘사하는데 이것은 요한의 작품이다?
- 요한은 상징의 예술가인가?
계시록은 요한이 100회 이상, 보고, 듣고,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다.
요한의 개인 신학은 없다.
3. 한 때, 두 때, 반 때 - 이것은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다?
- 3년 반의 기간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 3년 반은 초림과 재림의 기간과 그 기간 동안 성도들이 박해받는 것을 종합해보면 장차
적그리스도에 의해 받게 되는 실제적인 3년 반의 시간도 나타낸다.
4. 5장의 두루마리 인 떼심은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일곱째 나팔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
5. 마지막 나팔로 재림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음
6. 음녀
큰 성 바벨론은 세상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왜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불살라 버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다.
악의 자기 파괴적 성격이라는 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음녀는 큰 성 바벨론으로 곧 세상이라는 견해는 매우 문자적인 접근이다.
음녀가 구체적으로 일곱째 나라(제국)를 다스리는 정신적인 지주라는 것이 표현되어 있기에
범세계적인 풍조라고 보는 것은 추상적이다(17:9-11).
적그리스도가 실제적인 인물인 것 같이 음녀 또한 추상적인 세상이 아니라 힘을 가진 존재이다.
둘 다 일곱째 나라에 속하여 있으면서 서로 연합해서 악을 이루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7. 17-18장에 나오는 일곱 산이 로마의 일곱 언덕이라는 견해
17:10절에 일곱 산은 일곱 제국을 나타내며 결국 적그리스도와 음녀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8. 19장의 백마 탄 군대가 성도들이라는 견해는 재림과 부활이라는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9. 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 선지자는 특정한 개인을 말하지 않고 교회를 대적하는 사탄의 도구,
악의 세력이라는 견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재림이 없다고 했다.
반드시 그가 등장한 후 주 재림이 시작된다고 했다(살후2:3).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불못에 던져졌다.
저자의 주장처럼 사람이 아니라면 그 둘만 먼저 불못에 던져졌겠는가?
10. 신자가 두 번 부활한다는 사상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죽음 후 신자가 영적으로 부활한다는 것이 첫째 부활(계20:5)이라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개인적인 주장인지 아니면 무천년의 견해인지 모르겠다.
신자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이다.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된 것이 어떻게 부활인가?
11. 새 예루살렘 성은 완성된 교회의 모습?
새 예루살렘 성을 성도들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는 무천년적 관점이다.
새 예루살렘 성이 곧 교회라는 주장은 지극히 편협한 생각이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장막이다.
그곳에 성부의 보좌와 예수님, 네 생물, 이십사 장로, 천군천사들, 천국에 있는 의인의 영들,
즉 천상교회가 존재한다.
이런 것을 다 생략하고 단순히 성도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고 한다.
이런 견해는 성도들이 문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구절들을 보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있다(계21:24)
12. 낙원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견해?
어떻게 이 땅이 낙원인가?
사도 바울이 다녀왔던 낙원(셋째 하늘, 하나님의 보좌)이 존재하지 않고, 이 땅이 새로워질 때
낙원이 형성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신학의 기본을 무시한 표현이다.
무천년주의 신학의 문제점
1. 성경의 영감 됨
사도 요한이 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했다는 견해는 계시록에 대한
요한의 보고 들었다는 것을 기록한 것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만든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보았던 환상이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은 일맥상통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요한은 구약성경을 통해 계시록을 드러내고자 애쓴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2. 강조점이 초림인가? 재림인가?
선지자들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별로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기껏해야 하나님은 예수님의 초림만을 많이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구약성경은 왕으로서 통치하는 재림적 상황을 초림보다 훨씬 많이 기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다.
3. 무천년은 신약시대 사탄의 활동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사탄이 묶여 있어서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죽기까지 어린양의 피와
말씀으로 싸워서 사탄을 이기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계12:11).
사탄의 과도한 묶임은 곧 교회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신학과 연결된다.
결국 교회는 무한한 권세를 가졌고 그 권세를 세상을 향해 펼쳐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러한 신학이 곧 교회의 타락을 조장한다.
역사적으로 로마 가톨릭 이런 실수를 해왔는데 우리 역시 이런 신학 속에서 같은 과오를
저지르기 쉽다.
4. 하나님 나라 = 교회?
이런 등식은 많은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성도(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천사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이
포함되어야 한다.
건전한 견해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현재적 시대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간다고 보는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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