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고신대학원 교수로 가르칩니다.
20년이 넘게 요한계시록을 연구했습니다.
참고문헌을 보니 참으로 방대합니다.
부록을 보면 계시록 연구를 통해 찬송까지 관여할 정도로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부분적 과거론과 다차원적 해석의 공공선교적 적용"이란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계시록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되었고, 주변 학문들과 문화들이 계시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연구 방향이 보입니다.
분량이 많지만 간략하게 핵심이 되는 곳만 몇 군데 짚어보겠습니다.
(충분한 답변은 이전의 글 '요한계시록 김상훈'을 참고 바랍니다.)
1. 요한에게 계시를 주었던 '사자(천사)'는 누구인가?
"계시는 계시의 근원인 성부 하나님께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고, 천사(앙겔로스)를
거쳐 요한에게 전달되었다. 여기서 계시의 중개인으로서 천사의 역할은 다소 모호하지만,
천사가 언급됨으로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된다.
계시록에 계시의 중재자로 천사가 등장하지만, 예수님이야말로 성부의 계시를 유일하게
드러내고 집행하는 분이시다...정확히 말하면, 1절의 그리스어 구문은 천사가 메시지를
받아서 요한에게 전달했다고 말하지 않는데, 계시록의 메시지는 천사를 수단으로 하여
전해졌다."(p. 71)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사자(천사)를 보내시어 '교회들에 관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셨다."(p. 692) - 교회들은 복수이고, 사자는 정관사가 붙은 단수이다. 도대체 어느 천사가
교회에 와서 증언하였는가? 교회에 증거하신 분은 성령님이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
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11,17,29, 3:6,13,22) - 성령(단수)
저자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요한에게 계시를 전해준 존재가 천사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사자'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연구가 결여된 듯합니다.
(사자 - 천사, 사람(왕, 제사장, 선지자, 전령), 예수님(말3:1 - 언약의 사자), 성령)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단지 작은 것을 놓친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큰 흐름을 엉뚱한 곳으로 흐르게 하기 때문입니다(창48:16, 출23:20-22,
사63:9-14).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엡1:17) 요한계시록의 계시도 다 주신 것입니다(계1:10, 4:2, 17:3,
21:10). 천사는 성령이 주신 계시를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도우미 정도 입니다.
- 충분한 답변은 이전의 글 '요한계시록 김상훈' 참고 하세요.
2. 계시록에서 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특별히 성부 하나님의 '장차 오실 이'(계1:4,8, 4:8, 11:17, 16:5)를 어떻게 보는가?
"보좌 위에서 통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현재와 과거를 통치하시며, 지금도 계속하여
방문하신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성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오고 계시며, 장차 역사하실
것이므로, 로마제국에서 장차 존재할 것이라고 묘사된 신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제우스는 이전에 있었고, 지금 있고, 장차 있을 것이다."(p. 87-8)
저자의 견해대로라면 성부 하나님은 지금도 자주 방문하십니다. 수억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방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과 성경에서는 이런 주장들이 설득력이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의 재림 때 함께 오십니다.
역사적으로 미래에 있을 한 번의 사건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살전4:14, 히1:6).
그래서 성부 하나님의 얼굴을 악인들이 보게 됩니다(계6:16).
성부 하나님이 오신 이후에는 '장차 오실 이'가 생략되었습니다(계11:17, 16:5).
이미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요한 힌트가 담긴 '장차 오실 이'를 간과한 것입니다.
"네 생물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셔왔고, 지금도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신
(현재와 매래에 역사를 주관하시는) 성부를 찬송한다."(p. 227)
저자의 이런 해석은 재림의 긴박성을 느슨함으로 바뀌게 합니다.
성경의 의도와는 다르게 재림 이후의 가시적인 통치와 현재의 성령을 통한 통치 사이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24장로의 찬양 가사는(계11:17) '우리가 주 전능하신 하나님, 곧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셔 오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큰 권능으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이다.
17절에서 '장차 오실 분'(혹은 지금도 오시는 분)은 생략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미래
통치를 현재적으로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계속하실 것이기 때문이다."(p. 371)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통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보좌에 있는 성자께서 그의 영(예수의 영, 성령)을 보내어 통치하기에
누구든 그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만 미래의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성부와 성자께서 가시적으로
통치합니다. 이런 뚜렷한 특징을 없애버리는 해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미래의 통치를 현재적으로 시작해서 '장차 오실 이'를 생략했다면,
계1:4,8, 4:8절 역시 생략되었어야 합니다.
3.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은 처음사랑은 무엇인가?
"아마도 에베소교회가 거짓 사도(순회 설교자)와 악한 자 그리고 영지주의적 혼합주의
자들인 니골라 당을 진리의 복음으로써 분별하는 주로 지적인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사랑이라는 정서가 메말라버렸던 것 같다."(p. 133)
저자 역시 일곱 교회에 나타나는 '너'와 '너희'의 단수와 복수 개념이 희미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일부가 행한 일을 전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들도 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보면, 잘못된 자들은 책망하며, 나머지 관계
없는 자들은 책임이 없음을 명확하게 합니다(계2:24).
"10절(계2:10)에서 2인칭 단수형 너와 복수형 너희가 함께 등장한다. 계시록 2-3장에서
복수형 너희가 가끔 나타난다(계2:13,23,24-25). 너와 너희가 혼용되므로, '너'는 편지의
수신자인 하나의 지역 교회 전체 공동체를 가리키는 대표 단수이다."(p. 152)
- 이런 분류는 '너'는 '너희'라는 복수와 다른 것인가? 예를들어, 자칭 선지자를 용납한 너는
두아디라 교회 전체인가? 24절을 보면 너는 용납한 자들을, 너희는 용납하지 아니한
자들로 분류된다.
처음 사랑의 상실은 니골라 당에 빠져 복음을 이탈한 일부 성도들에게 주신 책망입니다.
나머지 니골라 당의 잘못된 것에 대항하여 싸운 자들은 칭찬을 받습니다(계2:6).
이그나티우스나 폴리갑 그리고 요한이 썼던 서신서들을 보면 처음 사랑은 곧 온전한
복음을 가리킵니다. 니골라 당의 미혹을 받은 자들이 복음 곧 처음 사랑에서 떠났음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4. 구원론과 관련하여 흰 옷을 더럽힌 자들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가?
저자의 구원관은 개혁주의자들의 것과 같습니다.
성화는 구원의 탈락유무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후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출32:32).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청을 거부하시면서 죄지은 자를
내 책에서 지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문맥에서 녹명된 이름이 삭제되는 것은 영원히 저주받아
지옥 형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가? 이름이 하나님의 책 혹은 이스라엘의 명부에서 삭제되는
것은 죽음의 형벌을 가리킨다(사4:3, 렘22:30, 겔13:9). 따라서 계시록 3장 5절의 간본문으로
출애굽기 32장 32-33절을 고려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p. 185)
5.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시험을 면하게 해 준다는 의미는?
저자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온 세상이 아닌 로마제국으로 한정합니다.
매우 특이한 관점입니다.
"따라서 온 세상을 지구가 아니라 요한 당시의 로마제국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운데, 다음과
같이 신약성경의 여러 구절이 이 사실을 지지한다."(p. 194)
재앙을 받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땅에 거하는 자들은 계시록에 나타난 불신자들의 관용어인데, 저자는 성도들이라 생각합니다.
계시록 3:10 구절이 대환난에서 성도들을 지켜준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불신자들에게
내리는 심판 재앙들(인, 나팔, 대접 재앙들)로부터 성도들을 철저하게 구분하여 보호한다는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교회에게 시험의 때를 면제하지 않으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시험이 없는 영역에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시험의 때로부터 지켜 주실 것'
이다. 다시 말해,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시험으로부터
지켜주신다."(p. 193)
6. 흰 말 탄자가 그리스도인가?
"계시록 6장에서 첫째에서 넷째까지 인의 심판은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7교회의 대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계시록의 응집성과 통일성을 고려한
다면, 첫째 인을 계시록 19장 11절의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p. 269)
저자는 첫째 인 재앙에 등장하는 흰 말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께서 세상(로마제국)을
정복하는 사건으로 해석합니다(p.268).
역사적으로 이미 일어난 사건이면서도 앞으로도 자주 일어날 흐름으로 보는 듯합니다.
※ 흰 말 탄 자와 첫째 인 재앙은 무엇인가? - https://oible.tistory.com/2398
7. 여섯째 인 재앙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섯째 인 재앙을 문자적으로 발생할 사건이 아니라 상징으로 봅니다.
해, 달,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상징하는 고위 관리나 인물들의 추락이라
주장합니다. 여섯째 인 재앙을 단지 여러 재앙 가운데 하나로 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여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를 흘리는 것은 바벨론제국의
멸망을 예고한 이사야 13장 10절과 24장 23절, 에스겔 32장 7-8절 그리고 마태복음 24장
29절 등에 비추어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p. 285)
8. 14만 4천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은 누구인가?
인침을 받은 이유와 목적은?
저자는 14만 4천을 새 이스라엘인 모든 성도들로 보며,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은
14만 4천과 동일한 무리들로 봅니다.
왜 인을 쳐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는 희미합니다.
(인치심이 성도들을 심판재앙들로부터 악인들과 구별하여 보호한다는 것이 안 보입니다)
"계시록 7장 1-8절은 새 이스라엘인 144,000명에 관한 환상을, 9-17절은 144,000명과
같은 무리인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 백성의 찬송에 관한 환상을 다룬다."(p. 292)
9. 다섯째 나팔 재앙의 황충과 무저갱의 사자는 누구인가?
계시록 9장의 난해한 두 재앙(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 재앙)은 분량이 얼마 안 됩니다.
저자는 다섯째 나팔 재앙 전체를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따라서 인격화된 이 별은 사탄과 같은 악한 인물이다.
...황충이 5개월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되지 못한 자들을 해친다는 환상을 통해,
요한은 AD 66년 5월부터 5개월 동안 총독 풀로루스가 유대인들을 살해한 사건을 떠올렸을
수 있다...
5개월은 짧은 기간이다. 그런데 요한 당시의 관점에서 볼 때,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가진 황충
떼는 예루살렘을 5개월간 포위하여 함락시킨 로마군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던 5개월간, 주도권을 장악했던 열심당원의 포학성도 함께 떠올릴 수 있다."
(p. 321-324)
다섯째 나팔 재앙이 이미 과거에 다 이루어진 이야기일까요?
계시록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다소 맥이 빠져버렸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여섯째 나팔 재앙을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10. 여섯째 나팔 재앙의 불말과 이억의 마병대의 정체와 사람 1/3이 죽는데 이들은 누구인가?
역시 저자는 이 사건도 다섯째 나팔 재앙처럼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는 것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심판은 로마제국의 대규모 기마병들이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는 것으로 성취된 동일한 심판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섯째
나팔 심판은 시리아에 주둔한 강력한 살상력을 갖춘 로마군대가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
유대인들을 공격해 온 장면이다."(p. 326-7)
만일 저자의 주장대로 여섯째 나팔 재앙이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일곱째 나팔 재앙은
언제 일어나야 할까요? <속히>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해석이 가능할까요?
* 둘째 화(여섯째 나팔 재앙)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일곱째 나팔 재앙)가 속히 이르는도다
(계11:14)
11.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재림이 일어나는가?
계시록 전문가들은 11장 15절을 매우 중시여깁니다.
재림이 언제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재림은 일곱째 나팔(마지막 나팔 = 큰 나팔 소리 =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자 마자
일어납니다(계10:7).
"따라서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었다'를 재림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돌이켜
보는 구절로 이해할 이유는 없다. 또한 이 동사를 천국이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고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견적 아오리스트로 볼 이유도 없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가시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재림을 통해 이 땅 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을 잊은 듯합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가 성령을 통해 일어난다면, 장차 올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으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성부와 성자께서 통치하십니다.
12. 두 증인은 누구인가?
두 증인에 관한 저자의 관점은 매우 특이합니다. 두 증인을 교회 공동체로 확정하면서도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는 이스라엘이란 특정한 지역으로 봅니다. 더 나아가서 두 증인은
복음을 전파하는 신약교회라 주장합니다. 저자의 성령론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보편적인 개혁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열방에 빛을 발하는 촛대 역할을 감당해야 할
유대인들의 회복은 성령님, 곧 일곱 영의 능력으로 가능했다(슥4:14). 이를 위해 성령님
께서 임한 이 두 사람의 역할이 중요했다(달리 해석하면 구약 시대에는 특수한 자들만
성령이 임재했다는 주장).
스가랴 4장과 약간 달리 계시록 11장에서 성령 충만한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이자 복음의
빛을 발하는 두 촛대이다. 성령님께서 신약의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내주하시기에,
모든 성도는 촛대로서 복음의 빛을 발해야 한다.
따라서 특정인에게 성령이 임하신 구약시대와 달리(대하20:14), 신약시대에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은혜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임해 있다...
두 증인은 복음을 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두 증인이 증언을 마쳤을 때
무저갱에서 올라온 그 짐승과 더불어 전쟁하다가 순교한다."(p. 353-4)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에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남지 않습니다.
모두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견해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모순됩니다.
바울은 살아 있는 성도들은 죽지 않고 곧바로 부활체로 변화된다고 알려줍니다.
(고전15:51-52, 살전4:16-17)
'두 명의 선지자'(계11:10)라는 뚜렷한 정체성이 있는데 모든 성도들이라 하는 것은
문맥이나 성경 전체와 어울리지 않습니다(민11:29).
13. 계시록에서 휴거는 어디에 나타나는가?(15:2-4절)
적그리스도의 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초림일까요?
살아 있던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 주의 재림으로 부활하고 휴거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감을 저자는 그리스도의 초림 사건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와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을 해방하시고 승리를
주신다...주님의 희생은 그분의 백성을 위한 대속을 이루심으로써 그들을 새 출애굽
안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신다. 요약하면 출애굽 주제와 모세 상징주의를 통하여
요한은 '모세의 망토'를 '어린양의 어깨 위'에 걸쳐둔다."(p. 467-8)
14. 아마겟돈 전쟁(계16:12-16)은 언제 일어나는가?
"하나님과 교회가 악을 응징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므깃도 산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교회의
승리와 예배가 벌어지는 시온산과 대비되는 것처럼 보인다...아마겟돈은 인류가 다른 사람들
에게 가하는 모든 파괴에 대한 상징이라는 두루뭉술한 개념이 아니며,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의 절정도 아니고,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전쟁 특히 제3차 세계 대전과 무관하다."
(p. 497-8)
저자가 생각하는 재림 직전에 있는 아마겟돈 전쟁은 실질적인 전쟁이 아닌 상징입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단 한 번 일어나야 하는 사건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
"그리고 계시록 16장 16절부터 18장 24절까지 주요 이슈는 음녀 바벨론과 그녀가 탄 바다
짐승의 파멸이므로, 아마겟돈은 이 두 악의 세력에게 임할 심판을 가리키는 상징적 은유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p. 498)
15.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언제, 어디서?
저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현재,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이자 성도의 어머니이다. 교회는 혼인과 모성 이미지로 설명된다.
그러나 교회가 신부에서 어머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어머니에서 천상의 신부로
변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지금 누리며 그것의 완성을 대망하자."(p. 575)
16. 천년왕국은?
무천년주의 신학을 고수하는 저자는 천년왕국 역시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고 간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사탄은 이미 패배당하였기에, 천년왕국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p. 593)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 천사는(계20:1) 용을 붙잡아 천 년간 결박했다. 1,000년은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고 통치하시는 초림부터 잴미 사이의 긴 시간을 상징한다."(p. 596)
저자는 무천년주의 신학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부활과 거듭남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
합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1,000년이 차기까지 살아나지 못했는데, 이것은 첫째부활이다.
첫째 부활은 사람이 거듭나서 신앙적이며 윤리적으로 살다가 재림 이전에 죽더라도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는 전체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첫째 부활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전천년설처럼 첫째 부활을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모든 성도가 육체적으로 부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p. 603)
17. 새 예루살렘 성은 상징인가?
"요한이 계시록 21장 1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공간과 장솔르 밝히고, 2절에서 그곳의
거주민을 소개하는 자연스러운 순서를 존중한다면 이해하는 데 별반의 어려움이 없다.
새 예루살렘은 장소가 아니라 온 교회적이신 분(the whole church person)인 예수님의 신부
교회를 가리킨다(갈4:26, 계19:7-8)."(p. 635)
이런 관점은 계시록 21-22장에 나타난 새 예루살렘 성의 특징을 하나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손을 댈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빠져 버립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교회로 보는 것은 성경의 마지막 장의 해석을 포기한 것입니다.
* 사람들(성도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새 예루살렘 성)로 들어가겠고
(계21:26)
※ 새 예루살렘 성의 여러 이름들 - https://oible.tistory.com/3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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