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출판된지 약 1년 정도 되었습니다(2022년 10월).
저자 김상훈 교수는 총신대학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KECNT(한국신약해설주석)의
총괄 책임자입니다.
신학지남에 계시록에 관한 논문들을 자주 기재해서 몇 편을 요약해서 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김상훈 교수가 쓴 요한계시록에 대해 간략하게 핵심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본서의 특징
저자는 본서의 특징을 몇 가지로 말씀합니다(p.30-33).
① 문자적 해석을 먼저하고 필요한 경우 상징적 해석을 한다.
② 계시록 본문의 구문(syntax)과 문법(grammar)과 구조(structure)를 최대한 고려한다.
③ 순차적 의미에 주목한다.
④ 순차적 해석은 순환적 해석과 다르다.
이 책을 평가한 신현우 교수 역시 저자의 주관점을 잘 묘사합니다.
"김 교수님은 지난 수십 년간 매진한 구조분석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도달
했는데, 통찰력 있는 구조 분석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연구를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키는 데 기여
하는 주석서를 내놓으셨습니다."(p.14)
2. 핵심 파악
1) 요한에게 계시를 전달한 존재가 천사인가?(계1:1, 22:6, 16)
"하나님께서 계시를 알려 주신 방법은, 그분의 천사를 보내셔서 그의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천사를 활용하여 그리스도의 계시가 알려지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천사'는 '사자'로 번역할 수 있으나, 인간 전달자는 아니다. 하나님과 요한 사이의
다른 전달자가 없다. 그러므로 천사로 본역하는 것이 옳다."(p. 218)
저자는 요한에게 계시를 알려준 천사를 구체적으로 마지막 설명을 하는 천사로 봅니다.
요한이 계시를 듣다고 절 하려고 했던 천사라고 지목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내신 "나의 천사(1:1, 그의 천사)는 요한을 이끌어 그로 계시의 내용들을
보게 하고, 듣게 하던 안내(가이드) 천사일 것이다(19:9-10;22:8-9)...'그의 천사'를 통해
계시를 전달하신 경우가 많다(1:1, 22:6,16)."(2권, p. 549-550)
왜 계시의 전달자가 누구인지를 논하는 것이 중요한 의제일까요?
성경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어떻게 계시를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을까요?
계시의 영은 오직 성령님 뿐입니다(엡1:17).
이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성령론까지 확대되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삼위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에서 시작됨을 방해하는 해석입니다.
앙겔로스(사자)라는 단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존재로, 천사, 사람, 예수님, 성령님이
사용되었다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산물입니다.
"앙겔로스 어휘는 요한계시록에 68회 나타나지만 문맥마다 다릅니다.
천사, 사신, 전령, 성령 등입니다"(성서주해 요한계시록, 김철손, p. 77)
저자는 성령께서 앙겔로스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자리에 천사를 놓은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천사들 - https://oible.tistory.com/3961
※ 천사가 계시를 주었는가? - https://oible.tistory.com/4476
2)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1:4,8, 4:8, 11:17, 16:5)
이 구절이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저자의 견해는 매우 올바릅니다.
다만 이 구절이 주는 사실의 무게를 잘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넘겨버립니다.
"언제든 오시는(임재하시는) 분이지, (어느 특정한 때에만) 오실 분, 또는 오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역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 세 번째 표현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미래적 표현이지만 언제든 우리에게 계시는 분, 또 오시는 분, 즉 미래 역사의 개입자,
종말 계시를 이루시고 종결하시는 주체가 되신다는 뜻이다. 이들 이름은 다시 8절과
4:8절에서 반복되고, 11:17(오실 분이 없음)과 16:5(오실 분이 거룩하신 분으로 대체됨)에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이들 이름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중요한 칭호이다."(p. 229)
저자가 이 구절의 깊은 의미를 놓침으로 인하여 계시록을 삼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시각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재림의 시기와 장소에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일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11:15절의 일곱째 나팔을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과
다른 것으로 나아가게 합니다(8번에서 다룸).
3)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는 '처음 사랑'은 무엇인가?
"에베소 교회의 첫사랑은 형제 사랑을 빼고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가진 수고와 인내,
그릇된 이들을 시험하고 그 거짓을 드러내는 일, 그 이름을 위하여 참고 지치지 않은 일 등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가능할 수 없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 성도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거나 잃어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을 분리할 수 없다면, 에베소 교회의 첫사랑에는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이 함께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남았으나
형제에 대한 사랑은 약해진 것이 아닐까?"(p. 299)
저자는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는 처음 사랑을 이웃 사랑 혹은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 사랑까지
확대합니다. 아쉬운 것은 '너'라는 칭호가 부분적으로 일부 성도들인지, 모든 성도들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책망받은 '너'가 니골라 당에 빠진 성도들이라는 것까지는 연결하지 못합니다.
처음 사랑 역시 사도들의 전해 준 복음이란 사실도 보지 못합니다.
* 첫사랑은 무엇인가? - https://oible.tistory.com/279
* 교회에 대한 단수, 복수 이해 - https://oible.tistory.com/178
4)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과 구원은 무관한가?
계시록을 다루다보면 자연스럽게 구원론 문제까지 나오게 됩니다.
저자는 흰 옷이 더럽혀지는 것과 구원은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처럼 성화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것일까?
"추가되는 두 개의 약속은 생명책과 이름에 대한 것이다. 생명책에서(결코) 지우지(제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두 번째 약속은 생명책에 그 이름을 그대로 남겨놓겠다는 것이다...구원의 취소
가능성을 전제하는 말씀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 말씀은 오히려 견고한 구원의 확신과 굳건한
견인의 자세를 촉구한다."(p. 350-351)
5)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겠다'(계3:10)의 의미는?
"또는 이 말씀을 종말의 환란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환란 때의
시험에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에서 지킬 것이다"는 환란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말씀이기 보다는 환란에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환난에서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방식은 계시록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특정 재앙을 피하게 할 때(다섯째 나팔, 9:4)도 있고, 재앙의 핍박을 인내로 견뎌내게 할 때
(짐승의 핍박, 13:10), 또는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할 때(다섯째 인, 6:9-11; 또 12:11, 13:15)도
있고 때로는 이김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게 할 때(심승 집단과의 싸움, 17:14)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보호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느 형태든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은 성도들을
향해 펼쳐지며, 그들을 구원의 믿음 안에 든든히 세운다."(p. 363-364)
이런 관점은 대환난과 심판재앙들을 구분하지 않음에서 발생한 혼란입니다.
대환난은 악인들이 아닌 성도들만 받는 시험이고, 심판재앙들은(인, 나팔, 대접 재앙) 성도들이
아닌, 오직 악인들만 받습니다.
※ 대환난과 심판재앙 - https://oible.tistory.com/1687
★ 오류에 빠진 시험 이야기 - https://oible.tistory.com/677
6) 여섯째 인은 여러 재앙 중의 하나인가?
저자는 여섯째 인 재앙을 어떻게 볼까요?
해와 달과 별들의 떨어짐과 대 지진 앞에서 놀람을 묘사합니다.
여섯째 인 재앙이 크고 두렵고 온 세계적인 재앙이라고 하면서, 또 재림이 임박했다고
말은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 재앙이 봉인을 여는(떼는) 때 발생하는 성격의 재앙이고 결국 일곱째 인에서 일곱
나팔이 나온다는 점(8:1-5)에서 여섯째 인을 한시적인 천지격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다음의 재앙들로 가기 위한 전조인 셈이다."(p. 461)
저자는 계시록의 재앙들을 순차적인 흐름으로 봅니다.
인 재앙이 다 발생한 후 나팔 재앙으로 넘어가고 대접 재앙으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여섯째 인 재앙이 재림의 징조라는 것을 망각했습니다.
(여섯째 인 재앙과 여섯째 대접 재앙은 순차적으로 발생한 재앙이 아닙니다)
※ 재앙이 순차적으로 발생하는가? - https://oible.tistory.com/776
★ 배치의 순서 - https://oible.tistory.com/3351
7) 14만 4천은 구원받은 유대인의 총수인가?
저자는 각 지파에서 인맞은 자의 수를 12,000명이라는 문자를 고수하지 않습니다.
충분하고 완전한 수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특이한 것은 14만 4천을 '유대인들의 총수'로 한정한다는 것입니다.
"9절에 나오는 하늘에 있는 셀 수 없는 무리는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이들'이므로 당연히 성도들을 가리킨다. 반면에 4절의 수는 유대인들의 수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도 구약과 신약과 미래에 있을 모든 유대인들의 수를 다 합한, 구원받는
유대인들의 총수라 할 필요는 없다. 미래, 종말의 특정한 때에 인침을 받을 유대인들의
총수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2권, p. 37)
"4절의 이스라엘 자손은 미래에 구원받을 유대인들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2권, p. 40)
저자의 관점은 14만 4천은 미래에 유대인들의 구원받을 숫자로,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들은
대환난을 겪는 마지막 시대(대환난)의 이방인 성도들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매우 올바른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반면에 14만 4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들이 인침을 받는 이유와 목적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G.E. Ladd의 주장처럼, 이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인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종들이란 칭호가 구원받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인침을 받는 이유와 목적은 매우 간단합니다.
"심판 재앙에서 악인들과 구별되게 하여, 성도들만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 14만 4천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의 정체 - https://oible.tistory.com/505
★ 17가지 증거들로 본 14만 4천 - https://oible.tistory.com/3876
8) 일곱째 나팔과 마지막 나팔은 다른가?
재림의 날짜는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천사들도 모른다고 못을 박습니다(마24:36).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재림이 어느 시점에 있고, 어떤 재앙이 일어난 후에 발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순간 재림이 시작되고(계11:15), 여섯째 나팔 재앙이 끝난 후
속히 일곱째 나팔이 울리며 재림이 일어납니다(계11:14).
이런 긴박함이 저자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려도 <가시적인> 재림이 일어난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곱째 나팔이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의 계시록은 재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이라는 핵심이 빠졌습니다.
"일곱째 나팔을 바울이 고전15:52의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는 말씀의 성취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일곱째 나팔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때의 나팔과 동일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2권, p. 183)
이런 관점은 계시록의 핵심인 재림의 순간을 빼버린 것과 같습니다.
대접 재앙들이 주의 재림으로 부활하여 휴거된 성도들이 공중으로 옮겨지고, 땅에 남겨진
악인들에게만 쏟아진다는 것을 놓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 이미 오셨기에 '장차 오실 이'가 생략됨 - 계11:17, 16:5)
※ 일곱째 나팔 = 큰 나팔 = 마지막 나팔 = 하나님의 나팔 - https://oible.tistory.com/3901
9) 휴거된 자들인가? 순교자들인가?(계15:2-4)
저자는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계15:2-4)를 순교자들이 부른 것으로 주장합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마치 예수님의 죽음처럼 하나님이 지켜보고만 계셨기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15:2-4절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의 통치로부터 벗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경험한 것을 노래했습니다. 즉 살아서 대환난을 겪고 있던 성도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듣고(히9:28) 주님이 재림을 하셔서 부활하여 휴거되었기에 살아서 부른
노래입니다.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2절)은 14장의 하늘에서 노래하는 이들(2-3)과 같은
이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144,00명과 하늘의 노래하는 이들이 함께 결합된 이들일 수
있다. 14장의 노래하는 이들은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 반면,
15장의 노래하는 승리자들은 유리 바다 위에서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가 어우러진 것은 마지막 때의 두 집단(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비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함께 모인 상태를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15장의 노래하는 이들은 짐승의(마지막) 때에 고난 받던 이들임이 밝혀진다(2절).
이들은 주로 짐승의 때에 박해를 받고 순교한 이들일 것이다(7:14; 13:7-10, 15)."
(2권, p.298)
※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휴거 장면 - https://oible.tistory.com/215
10) 순교자들만 천년왕국을 누리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롭게 왕권을 행사하는 이들은 4절에 언급한 순교자들(또는 믿는 자들)
이다. 천년 나라의 왕권을 누리기 위해 이미 죽었던 이들 순교자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다른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될까?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 때 부활할 것이다.
...순교자들만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모든 신자들도 천년기 왕권에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예, Ladd, 1972:263-8). 그렇게 된다면 천년기 동안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한 모든
믿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당시의 일반인들로 구성된 천년 나라가
이뤄질 것이다(오스본, 2002:707-8)."(2권, p. 454)
저자는 순교자들만 천년왕국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신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다소 완화된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유동적인 입장이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천년왕국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11) 불신자들도 천년왕국에 참여합니까?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만 저자는 참여한다고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주의 재림 때 모든 악인들은 두 부류로 갈라집니다.
적그리스도의 전쟁에 참여했던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적그리스도의 군대 참여자-
계19:19-21), 나머지 악인들은 천사들에 의해 아버지의 나라에서 분리됩니다(마13:41-43,
49-50). 살아있는 불신자들이 있는 곳은 풀무불이지 천년왕국이 아닙니다.
※ 악인들의 최후 - https://oible.tistory.com/4094
★ 곡과 마곡 = 만국 = 땅의 사방 백성은 누구인가? - https://oible.tistory.com/4090
12) 새 예루살렘 성은 교회인가?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새 예루살렘 성을 교회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박윤선 박사가 그렇습니다.
"새 예루살렘을 그 이름을 따라 거룩한 성(도시)이라 불렀는데,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한
이 성(도성)은 신부,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아, 변화된 미래적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잇다. 완성된 교회,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다."(2권, p.488-9)
무천년주의자들은 예외 없이 새 예루살렘 성의 물리적 공간을 제거하고, 교회 공동체란
상징으로 봅니다. 문법적 해석을 한다고 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합니다.
재림의 가장 큰 영광을 제거한 것입니다(눅9:26).
※ 새 예루살렘 성이 재림 때 내려오는 10가지 이유 - https://oible.tistory.com/1054
★ 새 예루살렘 성이 상징인가? - https://oible.tistory.com/3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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