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5:5-6)
예수님의 리더십은 사람 중심이면서도 필요를 공급하는 일도 병행하였다.
사자와 어린 양이란 극단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리더십의 유형이 늘 완전하면서도 균형을 잡았는데, 이런 리더십 유형을 배우고 싶다.
나는 사람과 일 사이에서 늘 일 중심이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 중심이 아닌 사람을 중시 여기는 리더십의 변형을 추구하려 하지만
습관화되어 바꾸기가 힘들다.
20대 학업과 사랑을 병행하는 게 몹시 어려웠다.
그래서 고심 끝에 사랑을 포기하고 성취감을 주는 일을 선택했다.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리더십이 삶의 모든 방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말씀과 기도 사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9:1 정도로 말씀(눈에 보이는 것)중심이 되었다.
이론과 현장 사이에도 역시 8:2 정도로 이론 연구에 시간을 보냈다.
예수님의 유형과는 한 참 다른 곳에 서 있었다.
선교학에서 예수님은 사람에게도 10(완전함), 일에도 10(완전함)을 드렸다.
모든 분야에서 완전함에 도달했다.
나는 잘한다고 하는 쪽에도 10 근처에 가지 못했고, 나머지 분야는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일 중심의 삶은 가보지 못한 길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사랑과 관계의 허전함이 몰려왔다.
특히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타인의 아픔과 기쁨에 대해 같은 마음을 품기 어려웠다.
그런 나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며, 어렸을 때의 내 모습과는 다른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도
했다. 시골 아이가 도시 아이가 되고 싶은 것처럼 어색했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처럼 양쪽 모두에 충실하도록 변화를 추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