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처럼 멀리 떨어져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만남이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1. 에덴동산
하나님의 계획은 흙으로 만든 인간을 번성시켜서 그들로 하나님의 원 형상인 부활의 몸 곧
영광의 몸으로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안에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류번성을 명령했습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늘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에덴동산 밖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크게 번성하여 에덴동산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하나님과의 만남이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상상함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추방당한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회복시켜 에덴동산 창설의 목적을
성취했습니다.
*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계22:26)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정기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고, 죄를 짓기 전까지 매우
행복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3:8).
2. 예루살렘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간을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가운데 예루살렘 성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민족을 택하여 세운 것을 넘어, 에덴동산과 그 밖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지속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에 와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은
마치 에덴동산의 재연처럼 유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따라 예루살렘 성에 올라가며 부른 찬양들은 훗날 주의 재림과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모습의 예표가 됩니다.
사탄과 악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없애버려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단절시키려 합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단순한 나라와 도시(성)가 아니라 깊은 하나님의 계획을 품은
영원한 소망을 주는 곳입니다.
* (악인들이)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시83:4)
예루살렘 성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을 예표하는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상의 성도들이 생활하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듭난 성도들이며, 거룩한 백성들 입니다.
3. 새 예루살렘
에덴동산을 이어 예루살렘 성의 역할은 주의 재림과 함께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옴으로
막을 내립니다. 막을 내린다는 의미는 그 역할을 다하고 실체가 와서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뵈며, 또 부활의 몸을 입고, 성도들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흙으로 지음받은 몸이 부활이란 영광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아담과 하와로 시작된 인류가 번성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충만한 수에 도달합니다(롬11:25).
더 이상 하나님과 성도들은 이별하거나 멀리 떨어져서 희미한 상태로 만나지 않습니다.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2)
*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계22:3)
성지순례로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합니다.
과거의 흔적을 느껴보면서 또한 광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통해 본다면
더 값진 여행이 될 것입니다.
4. 교회
많은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 성을 교회 곧 성도들의 집합체로 봅니다.
쉽게 말해서 새 예루살렘 성을 '교회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계21:2,9-10).
교회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고, 구별된 예루살렘(이스라엘)으로 한정되었다가
(구약교회), '이방인들(열방)까지 확대(신약교회)'되었습니다.
교회 곧 성도들이 누리는 장소가 에덴동산과 예루살렘이었고,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 성이
됩니다. 장소와 인물을 동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접근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과 교회(성도들)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오늘날 무천년주의뿐만 아니라 좀 배웠다 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 신학자들도 새 예루살렘 성이
교회를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서구 신학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최근 유럽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그들의 잘못된 신학들도 빨리 무너지고 올바른 신학이
세워져야 함을 뼈저리게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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