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저자들의 구약인용은 의외성이 있습니다.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와 신약의 저자들이 문맥을 이어가면서 편하게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구약을 바꾸어 또 다른 단어로 사용할 때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3:7-8)
★ ...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시95:7-8)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갑자기 성령이 말씀하셨다를 추가한 것입니다.
시편 95편을 통해서 성령이란 직접적인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그의 손(하나님의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구약성도들을 언급합니다.
※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가르치는 백성이며,
<그의 손 = 성령>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시95:7)
둘째, 이스라엘이 그의 음성을 들었다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음성을 주고받았을까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을까요?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로, 어떻게 행해야 할지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하나님의 음성일까요?
더 넓게 보면 율법 역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율법을 따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합니다.
근본적으로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며, 그것을 성령이 조명하였습니다.
◉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출23:20-21, 사63:9-14)
하나님의 음성이란 결국 성령님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사63:9-14).
신구약교회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계2-3장).
시편이나 히브리서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대상을 <오늘>로 연결합니다.
단순히 모세를 통해 주어진 지시사항이 아니란 의미입니다.
어느 시대나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 즉 성령의 말씀하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대상 역시 지도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나 제사장 혹은 왕들이나 지도급 사람들만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음성은 모든 언약백성들이 들어야 합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르스는도다(행7:51)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곧 그가 보내신 사자 곧 성령의 음성입니다.
신약 저자들의 구약인용은 말씀의 온전한 이해에서 그 폭이 확대되며,
올바르고 쉬운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 잘 해석된 단어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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