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방언설교를 듣다가 본문으로 잡은 것이 명확한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것인지 난감했습니다.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본문이 성령의 은사로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으로 기도하심을 설명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삼위 일체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중보하는 기도하는 것일까요?
복음서에는 연약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 있을 때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 ...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성령님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중보기도가 왜 필요할까요?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연약합니까?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의 출발점입니다.
우리 연약함의 이유는 우리 성도들만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지만,
모든 피조물들은 여전히 신음속에 있고, 비록 우리들도 성령 안에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들도 우리 몸의 속량 즉 부활의 몸을 입음을 기다리는 점에서
현재의 상황에서 탄식합니다(롬8:18-22).
성도가 모두 알고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스스로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것만을 하나님이 응답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제대로 구하지 못한 것이나, 잘못 구한 것도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다시금 아버지께
간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