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4-5장은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보았던 하늘 보좌에 대한 글입니다.
여기서 한 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 보좌"가 있는 이곳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낙원인지, 천국인지, 어버지의 집인지, 하늘 장막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새 예루살렘 성"이라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대부분 새 예루살렘성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다른 용어들도 모두 같은 의미이며 같은 장소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 = 낙원 = 내 아버지의 집 = 하나님의 도성 =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
= 영구한 도성 = 더 나은 본향 = 예비된 한 성 = 처소(거처) = 셋째 하늘 = 흔들리지 않는 나라
관련구절은 직접 찾아보시고 정리하시면 됩니다(눅23:43, 계2:7, 고후12:2,4, 히12:22-23,
요14:2-3, 고후5:1-2, 히12:28, 히11:16).
어떻게 같은 장소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셋째하늘 곧 낙원이라 했던 곳에서 받았던 계시도 결국 같은 곳입니다(고후12:1-4).
바울에게 계시를 말해 주었던 존재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나 천사들, 아니면 24장로들, 네 생물(그룹)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하나님의 보좌는 이곳저곳에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한 곳에만
존재합니다. 박해로 인하여 신앙의 배교를 생각했던 로마에 있는 유대 공동체를 향해 썼던
히브리서를 보겠습니다.
옛언약으로 돌아가려하는 그들을 새 언약을 통해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새 언약이 어떻게 맺어졌는지 설명합니다.
옛 언약이 시내산이라는 보이는 곳에서 맺어진 언약이라면,
새 언약은 이 땅이 아닌 하늘의 시온산과 새 예루살렘 성의 존재들 앞에서 맺어진 것을 강조합니다.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새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인신 예수와...(히12:22-23)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간단하게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계3:12, 21:2, 10)
새 예루살렘을 또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장막"(계21:3)이라 합니다.
무수한 표현들이 있습니다만 모두 같은 장소입니다.
그곳엔 시온산이 있고,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천만 천사들과 천상교회(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 - 계6:9)가 모두 같이 있습니다.
"유리 바닷가"가 어디에 있는가?
새 예루살렘 성 즉 하나님의 장막에 있습니다.
그곳은 천국이며 낙원이며 수많은 이름들로 우리 성도들에게 그 성격을 설명해 줍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6).
이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수도 있습니다.
매우 중요하기에 이런 정립이 먼저 필요한 것이고 계속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요.
4장에서 보았던 유리바닷가는 "수정과 같이 맑은 모습"입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입니다.
생명수 강이 "수정과 같이 맑은" 모습입니다(22:1)
새 예루살렘 성 자체가 "수정과 같이 맑은 모습"입니다(21:11)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문이 맑습니다(21:21)
15:2절에 나오는 유리 바닷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표현됩니다.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계속해서 15:2절을 보니, 짐승과 그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그곳에
서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곳과 4:6절이 전혀 다른 곳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15:2절에 다시한번 그곳은 그냥 "유리 바다가"라고 표현합니다.
앞 부분은 불이 섞인 모습으로, 후반부는 그래도 그곳은 유리 바닷가라고 표현합니다.
모두 같은 곳입니다.
단7:10절에 보니, 주님의 재림 때(무천년주의 자들은 이것을 초림이라 주장하는 실수를 합니다),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보좌) 앞에서 나오며... 심판이 시작되자마자, 적그리스도(작은 뿔)는
잡혀 그 시체가 타오르는 불에 던져집니다(이런 말씀을 보면서 초림으로 보는 무천년주의 주장은
정말이지 신학을 위해 성경을 가감하는 행위입니다).
계15:2절과 단7:10절은 같은 상황을 잘 묘사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이런 질문을 해 보셨으면 합니다.
"짐승과 그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순교자들인가,
아니면 살아서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15:3-4절에 잘 나타납니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그 위기를 벗어났을까요?
어떻게 누구의 도움으로 벗어났을까요?
"전능하신 이의 크고 놀라운 일이 나타났다고 합니다"(15:3)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다고 합니다"(15:4)
계15장의 노래는 어린양의 노래이며 모세의 노래라 칭합니다(3)
"여호와여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15:11)
놀라운 일을 행함으로 죽음 직전의 이스라엘이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홍해 바닷가를 건넌 후 불렀던 노래입니다.
어린양의 노래나 모세의 노래는 모두 같은 상황입니다.
위기의 순간,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는 상황,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노래는 "살아서 휴거된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만 되겠습니다.
이부분 부터는 거의 논의가 되지 않았기에 생소할 수 있습니다.
휴거 된 자들이 왜 새 예루살렘 성의 유리바닷가에 서 있는가?
우리가 천국으로 올라가서 그곳에 산단 말인가?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 때 하나님의 장막이 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계3:12, 21:2, 10 - 계시록에서 "3번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계속해서 올리겠습니다
(긴 글을 짧게 요약해서 - 간단명료 - 올리려 하니 또 하나의 작업입니다.
그렇지만 쉽게 전달하는 것이 유익할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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