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 톰 라이트(N.T 라이트)

오은환 2019. 6. 13. 18:57

 

 

원 제목은 바울은 실제 무엇을 말하려는가? - What saint Paul really said?

정도로 보면 좋겠습니다.

 

톰 라이트(1948 ~ )는 이 책을 쓸 때(1997년) 이미 20년 이상 바울신학을 연구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로마서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바울신학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그런 자신을 아직도 바울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산 중턱에서 안개가 깔린 산을 보듯한다고

학문적 수준을 평가합니다. 그는 다른 바울신학자들을 잘 평가했습니다.

특별히 다섯 명의 신학자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며 꼭 알아야 할 신학자로 지목합니다.

 

1. 슈바이처

톰 라이트는 바울신학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슈바이처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슈바이처가 질문한 내용들은 오늘날까지 큰 틀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① 바울은 실제로 유대적 사상가였는가? 아니면 헬레니즘(그리스) 사상가였는가?

  - 슈바이처는 바울이 유대적 사상가였음을 주장합니다.

② 바울신학의 중심은 무엇인가? 이신칭의인가, 그리스도 안에서인가?

  - 슈바이처는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합니다.

③ 바울신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

 

톰 라이트가 평가한 슈바이처는 거인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20세기 초 반세기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펼쳐 놓았다. 그는 신학 분야에서

시끄럽고 천박한 난쟁이 무리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거대한 현인이었다"(p.17)

 

2. 불트만

슈바이처와 달리 불트만은 바울이 헬레니즘화된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회심 후 유대교 범주를 빨리 벗어났고, 헬레니즘 문화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p.19)

 

3. 데이비스(W.D Davies)

그의 저서 <바울과 랍비 유대교>를 통해 바울의 사상적 배경을 헬레니즘에서 끄집어 내는 것을 

철저하게 반대했습니다. 바울이 당대 랍비와 너무도 동일한 생각을 가졌다는 주장입니다. 

 

4. 케제만(Ernst Käsemamn)

톰 라이트는 케제만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했을까요?

바울이 유대교라는 환경 내부에서 유대교를 비판했다는 점입니다.

 

5. 샌더스(E.P Sanders)

톰 라이트는 샌더스를 자신의 친구로 소개합니다.

현재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듀크 대학의 교수로 있습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에는 관행적으로 생각해왔던 많은 것들을 책망합니다.

유대교는 행위구원론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바울 역시 그런 면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킬 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을 중시여깁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킬 때 그것은 은혜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언약 백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약 백성 안에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다. 언약 백성 안에 속하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이런 틀에 샌더스가 이름을 붙인 것이 그 유명한 <언약적 신율주의 - covernantal nomism>다.

유대교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언약에 대한 사람 편의 반응이다"(p.25)

 

문제는 샌더스가 주장하는 다음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샌더스는 유대교가 과거나 지금이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샌더스는 바울 해석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입장, 특별히 주류 개신교의 입장을 뒤엎어버렸다.

그는 유대교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완벽하게 유효하고 적절한 형태의 종교라고 주장했다.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이 유대교에 가한 단 하나의 비판은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바울이 기독교 안에서 구원을 발견했기 때문에 유대교로는 충분치 않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었다"(p.25-26)

 

샌더스는 철저하게 슈바이처의 이론을 따르며 '참여'라는 말을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받아 바울신학을

표현합니다. 톰 라이트는 이런 샌더스의 바울신학에 대해 <혁명>이라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