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에 대한 용어는 세상 사람들도 종종 사용합니다.
개과친선(지난 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다)이란 말로도 사용됩니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인 것들이 새롭게 되었을 때 사용되기에 이제는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거듭남이 무엇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만큼 정립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거듭남(중생)을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단순히 새롭게 된 시점만이 아니라 회심과 성화를 포함하는 인간 갱신의 전 과정을 표시하는데
사용합니다(기독교 신학개론, 루이스 벌콥 저, 신복윤 역, p.247).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콥은 "중생이란 말은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속에 심어주고, 영혼의 주도적
성향을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행위로 정의합니다...또한 중생은 은밀한 것이며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역이어서 인간으로서는 직접 이를 지각할 수 없고, 다만 나타난 결과로서만 알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은 중생과 회심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에는 그 변화를 직접 의식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학개론, 루이스 벌콥, p.248-249).
안토니 A. 후크마 교수는 어떻게 정의할까요?
그는 기독교인을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성령의 내주>를 거듭남(중생)의 증거로 봅니다.
"성경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의미에서 중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연관을 갖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① 중생이란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성령에 의해 우리 안에 심기워지며,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의미에서의 중생이다(요3:3,5).
② 심겨진 새 생명이 처음으로 나타날 때를 가리켜 중생이라 하기도 한다(약1:18, 벧전1:23).
③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최종적인 완성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중생이라 하기도 한다(마19:28)"
(개혁주의 구원론, 안토니 후크마 저, 류오준 역, p.156)
중생이란 옛 사람이 죽고 새 생명으로 탄생하여 새롭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중생한 결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과정 역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옛 사람과 중생(거듭남)의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옛 사람은 그리스도로 인한 정결함이 없고 그 결과 거룩한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즉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입니다. 원죄를 지닌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할 단절됨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음으로 죄인이며 필연적으로 죽어야 할 상태입니다.
그러면 거듭남으로 어떤 상태에 도달할까요?
그리스도가 그 안에 거하고, 그의 보내신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거룩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심으로 의인이며 영생하는 존재로 바뀐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언제 거듭날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어머니 뱃속에 생명이 잉태될 때 입니다.
(당연히 신자의 자녀들에 관한 상황만 고려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신앙을 따라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의 언약이라 합니다.
결국 거듭남(중생)을 확인하는 것은 구원과 영생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기준과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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