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그와 함께하는 종교지도들을 가르칩니다.
질문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고 모른지를 드러냅니다.
간단한 질문 같지만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이것은 육체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원죄를 지닌 죄인임을 드러냅니다.
사람은 모태에서 잉태될 때 죄인으로 시작합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원죄를 지닌 인간은 살았다하나 죽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것입니다(엡2:1).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잉태되지만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해서
태중에서 거듭납니다.
즉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거듭났습니다.
이것이 구약성도들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본 구절에서 육의 태어남에서 영으로 난 것을 거듭남이라 정의합니다.
문제는 거듭남이 언제부터 있었는가에 대한 논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에서 거듭남을 인정하지도 또 안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합니다.
"어떻게 해야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것은 단순히 거듭남을 설명하는 원리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을 통해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육으로 태어난 자들은 육에 속한 자입니다.
또 지금까지 성령으로 태어난 자들은 성령에 속한 자들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난>은 완료분사 형태를 취합니다.
* The thing having been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e thing having been born of the Spirit is Spirit(로고스 바이블)
완료분사 having been born은 동사 현재형 is 보다 더 이른 시제입니다.
세밀하게 해석하면,
"육으로부터 '지금까지(혹은 계속해서) 나왔던 것'은 육이다"
"영으로 '지금까지(혹은 계속해서) 나왔던 것'은 영이다"
거듭남이 앞으로 오순절이 되어서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기서 육은 인간의 육체라기 보다는 옛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원죄를 지닌 옛 사람으로 나면 그대로 옛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이며,
성령으로 태어날 때에 비로소 거듭난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특이한 것은 거듭남을 이야기하면서 성령으로만 언급되었습니다.
<물이 빠진 상태>로 묘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포괄한 물이 빠진 상태로 묘사되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바탕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만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씀할 때 그 안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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