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칼빈이나 루터 같은 대신학자들도 주석을 쓰지 못했습니다.
후대의 내노라하는 신학자들도 포기했거나 썼다가 손해를 봤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여러 이유들을 들 수 있지만 접근 방법에서 문제가 보입니다.
대신학자들이 계시록 책을 펼쳐놓고 자세하게 분석하려는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대 신학자들도 실패자의 길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계시록의 프레임(뼈대)을 세우고, 구조로 해석하려 애씁니다.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계시록을 어떻게 전달하고 싶었을까요?
매우 단조롭게 설정했습니다.
편지를 읽는 자와 듣는 자가 자연스럽게 이해할 정도의 수준으로 전달한 것입니다.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 어려운 계시록을 단순히 읽고 들으면 이해하게큼 기록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초대교회 서신들은 교회에서 읽는 자가 있고 청중들은 들으면서 이해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인쇄기가 없어서 다량의 책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계시록이 환상으로 기록되고, 또 반복해서(십사만 사천처럼) 전달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십사만 사천처럼 잘못 해석해서 이단들이 생겨나는 곳도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종들이라 해놓고(계7:3) 이스라엘 가운데 십사만 사천이라 했으며(계7:4),
조금은 무료하게 열 두 지파의 이름을 후렴처럼 반복해서 불렀을까요?(계7:5-8)
지파의 배열도 뒤죽박죽하면서 말입니다?
요한은 어떤 환상도 보지 않았고, 오직 그 숫자를 듣기만 했습니다(계7:4).
청중들에게 큰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각 지파의 이름을 부르며, 그 숫자(12,000명)를 언급할 때마다 청중(성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들을 내릴 때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을 철저하게 보호한 것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과 교회들을 보호해 주시는 약속이 확실하구나 ~"
우리가 잘 아는 십사만 사천의 용어가 어떻게 흘러갈까요?
서로 다른 많은 단어들로 자유롭게 사용됩니다.
★ 하나님의 종들(7:3) → 이스라엘 가운데 십사만 사천(7:4) → 열 두 지파 가운데 12,000명(7:5-8)
→ 각 나라와 족속에서 나온 흰 옷 입은 셀수 없는 무리들(7:9) →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7:14)
→ 시온산에 있는 십사만 사천(14:1) →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14:3)
→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순결한 자(14:4) →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14:4)
→ 처음 익은 열매(14:4) →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14:4) → 거짓과 흠이 없는 자(14:5)
계시록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은 확실하게 정리가 됩니다.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을 하면서 고민합니다.
7장에는 십사만 사천을 확실하게 이스라엘로 확신하지만, 14장에 이르러서는 그런 확신이 사라집니다.
이스라엘로만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읽었던 당대의 청중들뿐만 아니라 인쇄기가 발명되어 책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청중들은 성경을 온전히 소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려 1,500년을 주로 듣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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