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칼빈신학

유럽을 뒤흔든 칼빈

오은환 2021. 4. 1. 18:41

칼빈의 성격에 대해 학자들은 쉽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복잡미묘함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젊은 칼빈은 수줍다고 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타는 편으로, 가끔 갑자기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를 제외하면 성품이 치밀하고 과묵하였다. 또한 대찬 성격이었으나

꼼꼼하다 할 만큼 정의의 진리를 따랐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주위 상황에

무관심하다고 보일 때도 있었다.

 

...루터는 너무 쉽게 사람을 사귄다고 할 정도로 사교성이 있었으며, 솔직하고 자유

분방하였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친하게 잘 어울리는 호방한 성격이었다."

(종교개혁사, 루이스 W. 스피츠 저, 서영일 역, p162-163)

 

칼빈은 자신의 달란트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외적인 활동을 자제하고, 공부와 저술로 교회를 돕고자 했습니다.

실질적으로도 그는 특별한 업무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행정과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보냈습니다.

 

"그의 전기를 쓴 데오도레 베자는 칼빈이 얼마나 소량의 음식만을 섭취하였는가, 늦게까지

깨어 있었는가, 또한 자기가 연구한 데 대해 다시 명상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곤 했는가

잘 묘사하고 있다. 칼빈이야말로 '서적들과 씨름하기 위해서' 태어난 인물이었다."

(같은 책, p.170)

 

"...그(칼빈)가 남긴 서신들만으로도 쉽게 35권의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털어

놓았다. 낮에 해가 비치는 동안에는 창밖을 내다 볼 시간도 없다네, 만약 이대로 계속된다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버릴 지경일세, 일상업무를 다 마친 후에도 수많은

편지를 써야 하고, 수많은 문의에 답해야 하지. 이 때문에 잠을 거르는 밤이 너무도 많은

실정일세"(같은 책, p.189)

 

칼빈은 제네바 중심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뜨거운 선교적 열정이

있었습니다. 조국 프랑스가 종교개혁의 길에 동참하기를 바랬고, 프랑스의 위그노(개신교인들)

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어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기를 갈망했습니다.

 

- 출처:동인천노회 성경지리답사/ 16세기 유럽 지도 -

 

제네바로 몰려든 유럽의 개혁자들을 가르쳐서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개혁

교회를 세우게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영국, 독일, 폴란드, 헝가리, 리투아니아, 네델란드 뿐만

아니라, 가톨릭이 강한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도 사람들과 서신을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도록

격려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재정적으로 열악한 교회와 동역자들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을 때 남은 재산은 거의 없었습니다.

바울처럼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살다 간 위대한 인물입니다.

 

칼빈의 몸은 제네바에 머물렀지만 그의 기도와 비전은 유럽의 교회들을 온전히 복음화하기 위해

늘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인구 1만명의 작은 도시 제네바가 유럽의 교회들을 소생시키는 심장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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