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에 푹 빠진 자들에게는 수많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이런 심각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부류가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입니다(사65:17-25).
▣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에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사65:19-20)
묘하게도 이사야 65장을 천년왕국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호칭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사실 천년왕국이란 단어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재림 후 펼쳐지는 세상의 이름은 <새 하늘과 새 땅 - 계21:1>입니다.
이사야 65:17절이나 요한과 베드로, 바울의 계시는 항상 일치합니다(벧후3:13).
*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
이전 것은 기억이나 생각조차 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왜 표현은 여전히 옛적 것을 사용할까요?
계시의 점진성이 주는 단계입니다. 창세기에 십자가라는 표현이 안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당대의 삶에서 간절히 원하던 최고의 수준으로 높여 표현합니다.
계시의 점진성 측면에서 이 구절들을 보아야 합니다.
마치 원시복음(창3:15)이 구체적으로 뚜렷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원시복음이 모세가 만든 놋뱀을 통해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으로 선명하게 드러남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역설적(paradox) 표현으로 이곳에서는 부활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❶ 재림 후에는 아기를 낳지 않는다 - 어린 아이가 없다(사65:20).
❷ 재림 후 혈과 육을 지닌 노인이 존재하지 않는다(사65:20).
❸ 재림 후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사65:20,25).
❹ 재림 후에 성도들의 소유를 탈취할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사65:21,25).
❺ 재림 후에는 재난이 없다(사65:23)
이사야 65장의 예언은 당대의 사람들이 잘 알아듣도록 표현했습니다.
바울이 셋째 하늘(낙원)에서 들은 계시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연수를 칠십이요, 오래 살아도 팔십이라 했습니다(시90:10).
거기에 비해 백 살이란 숫자는 얼마나 높은 수치입니까?
문자적으로 백 살이란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바울의 계시처럼 재림 이후에는 영생하며, 하늘의 천사들처럼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슬픔도 눈물도 아픔도 죽음도 불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며 그곳에서 천년동안 왕 노릇합니다.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리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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