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12:10)
하나님께서 죄악된 이스라엘을 향해 깨닫는 은총을 허락하는 사건이 언제 일어날까요?
선지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큰 애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연결됩니다.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
1. 초림으로 보는 견해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할 것을 예언하면서 이 구절을 사용합니다(마26:31).
하지만 초림의 예수님을 따랐던 유대인은 소수라는 점을 인식하면 대규모 회심은 되지 못합니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리라...(슥13:7)
2. 재림 직전 대규모 회심이라 보는 견해
여기에서도 두 부류로 나뉩니다.
1) 마지막 한 이레 안에서의 회심
한 이레의 후반부 곧 후삼년 반의 기간에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대규모 회심운동이 일어나서 적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전삼년 반의 기간이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의 밀월관계라면 후삼년 반은 대적관계가 됩니다.
후삼년 반이 되기 직전에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두 증인의 등장과 활동(계11장)의 결과로 이스라엘에게 대규모 회심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완악한 이스라엘이 두 증인의 죽음과 승천을 보면서 그들이 전한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정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11:13)
2) 재림하시는 주님을 보며 회심?
어떤 자들은 스가랴서를 인용하면서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슥12:10)라는 말씀에 재림 하시는
주님을 보며 대규모로 회심이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느 곳도 재림하시는 주님을 보며 회개하면 받아주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재림의 날은 악한 종들에게 갑작스럽게 임하여 심판하는 재앙의 날이라 선포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계시록 1장 7절의 애곡은 그들이 믿지 않았던 메시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회개의 눈물이 아닙니다.
설령 그 때 회개하더라도 구원의 기회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슥12:10)>는 무슨 의미일까요?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깨닫는 눈을 열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은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 하나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복사판처럼 따라 합니다.
두 증인이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행적과 죽으심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과 승천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것입니다.
완악했던 이스라엘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보며 돌이킨다는 주장은 완전히 비성경적입니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재림 때에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는 전무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 볼 때 회개가 일어납니다.
스가랴는 그 표현을 한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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